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던 며칠 전 저녁, 필자의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겨울밤의 비보가 메신저를 통해 필자에게 전달됐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참사’. SNS는 관련 글로 도배됐고, 뉴스에서도 현장을 생중계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애도의 물결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단 하루였다. 사고 발생 다음날부터 언론은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비극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고, 책임소재에 대한 공방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돌변해버린 언론의 태도에 여론도 휘둘렸다.‘ 학교의 관리 소홀’ 혹은‘ 학생회가 주도한 행사의 결과’를 문제삼아 다투기 시작했다. 교육부에서도 전국 대학에 ‘각종 외부 행사를 중단해달라’, ‘학생 주관 행사에도 대학 교직원들이 동행하라’고 권고하는 공문을 내렸다. 안전사고 예방을 학교와 학생 측에 모두 떠넘기고 있었다. 문맥상 사고 발생의 책임이 학교와 학생회 양자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선가의 말 가운데 진광불휘(眞光不煇)라는 말이 있다‘. 진실’한 광채는 명암을 초월하여 범인(凡人)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교와 학생회가 여론의 집단폭격을 맞는 사이, 정작‘ 가해자’인 코오롱그룹을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고 전에 있었던 학교 외부 행사에 대한 학교와 학생회의 갈등만 집중적으로 조명할 뿐‘, 학교 외부’에 대한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코오롱그룹은 모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는 등 조용히 사건을 수습하고 있었다. 범인들은‘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언론이 다루는‘ 사실’만을 좇았고, 가해자는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

범인은 모든 사물을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한다. 사고 이후 보도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은 명문(名文)으로 가득했다. 특히 합격 대기자들의 입학 여부나‘ 지잡대 학생의 죽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댓글은 충격적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색적인 비난과 '상식에서 벗어난’ 맥락의 글은, 범인인 필자로 하여금 모든 댓글을 읽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범인인 피해자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유모를 상처만 더해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책임소재를 교묘히 돌려버리는 교육부의 글과 가해자를 감추는 언론의 글, 이해하기 힘든 악플러들의 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분노해도‘, 힘’을 가진 몇몇의 글이 사회 전체를 뒤덮어버린다. 사건의 책임소재는 어느새 학생회에가 있었다. 피해자도 학생, 가해자도 학생. 웃긴다.

물론 학교와 학생회에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견 대립으로 인해 교통비만 지원해준 학교도, 행사를 주최하면서도 많은 것을 고려하지 못한 학생회도 책임이 없다하기 힘들다. 하지만 철저히‘ 사고’의 책임 소재만을 따져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부실공사의 결과이든 관리 소홀의 결과이든 가장 큰 책임은 코오롱그룹에 있다. 항상 해오던 것처럼 이 문제에서도 그들이‘ 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아, 모르겠다. 범인인 필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해하기 힘든 사회의 단면을 마주했다. 나름 기자라고 글 꽤나 쓴다며 자부하는 터인데, 이 수상한 명문가들 앞에서는 기도 펴지 못하겠다. 절필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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