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현장 르포] ①조선소로 향하는 대학생

한 해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곳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인간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돈’이다.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조선소 아르바이트.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돈’을 위해 불길로 뛰어들고 있었다.

부대신문이 그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직접 조선소 일자리를 구해, 노동자들과 함께 부닥치고 일했다. ‘야근’, ‘철야’, ‘특근’도 마다하지 않는 ‘REAL’ 노동자로 방학을 보낸 기자. 그들이 왜 조선소로 향하는지, 회사가 자랑하는 안전교육 수칙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온몸엔 멍이 들고, 코에선 쇳가루 나왔던 지난 방학 동안의 기록을 두 차례에 걸쳐 생생하게 전한다.

 

▲ 밤 늦게 퇴근해 새벽같이 출근하는 노동자들.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사진=사진작가 박현찬 제공)

작년 이맘 2월 한 달 동안 19살, 23살이라는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소를 찾았던 19살의 사내. 그는 입사한 지 8일 만에 26m 아래로 추락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했던 23살의 사내도 갑작스럽게 날아든 대형블록에 깔려버렸다.

꽃다운 나이의 그들은 왜 조선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는가? 대학생들에게 방학은 등록금·생활비를 벌기 위한 알바의 계절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방학 중 알바를 구하려 해도 일반 음식점이나 카페에선 방학 동안만 일할 사람은 뽑지 않는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5,210원이라는 최저 시급은 더욱 절망케 한다. 하루 9시간씩 한 달 꼬박 일해도 등록금엔 턱없이 모자란 돈.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도 빠듯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하루 일당 8만 5천 원은 가장 위험하다던 조선소로 향하게 하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모든 유혹에는 함정이 있는 법이다. 기자가 취업한 A회사는 지난 한 해 세계 최고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는 만큼 산업 재해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실제로 2008년엔 10명, 2009년 8명, 2010년 6명, 2011년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2월 한 달 동안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회사는 며칠 전 국내서 가장 안전한 조선소로 선정됐다. 조선소에서의 함정은 목숨일지도 모른다.

“무조건 고졸이라고 말해요”

 

조선소에 취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한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니 조선업과 관련된 구인광고가 넘쳐났다. 광고에는 필요한 서류나 취직 과정 등이 상세히 설명돼있었다. 전화 상담을 한 다음날 기자를 채용하기로 한 E회사의 김 팀장을 만났다. 김 팀장은 면접을 위해 직접 거제에서 부산으로 왔다. 면접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뤄졌다. 그는 오자마자 건강검진 결과를 요구했다. 결과를 보고선“ 오! 아주 깨끗하네요”고 말했다. 그의 말은‘ 오! 불량품은 아니네요’처럼 들렸다. 순간 공장에 납품되는 부품이 돼버린 기분이었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가 나의 이력서를 찢은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민진 씨 학력 다시 적으세요”라고 했다. 보통 대학생들은 며칠 일하다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 회사에서 싫어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 고등학교 졸업’, 이 한 줄만으로도 충분했다.

회사 입사가 결정된 후 김 팀장은 기자를 극진히 대해줬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가 왔다“. 민진 씨 내일 꼭 나와야 해요” “어디에요. 제가 그쪽으로 데리러 갈게요" “민진 씨 몸 괜찮아요?”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김 팀장이 일당에서 3만 원을 떼어간다는 사실을.

“민진 씨 돈 벌려고 온 거잖아요”

최근 조선소 취직과 관련한 사기가 많다. 불법 알선 업체, 불법 파견 업체로 인해 임금 체불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실제로 거제 일대에서 2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을 당했다고 조사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기자가 조선소에 취직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안전 교육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안전 교육을 받으러 간 날,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교육자 명단을 확인하니 기자의 회사가 바뀌어있었다. 기자는 분명 E회사 팀장과 면접을 봤고, E회사에 취직된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자 명단에는 B회사 소속이 돼 있었다.

당장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민진 씨도 돈 벌려고 온 거잖아요. 하루빨리 일 시작해야 민진 씨도 좋은거 아니에요? 그래서 일손 부족한데다 넣은거예요”라고 변명했다. 기자의 동의는 필요없었다. 동의도 없이‘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이력서’‘ 건강검진결과’를 다른 회사에 넘겨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무엇이라 따질 수 없었다. 실제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일주일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거제도에서 만난 대학생 조영웅(24) 씨도 일주일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라도 더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만 허비하는 게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조선소의 풍경은 낯설었다. 축구장 크기의 LNG와 컨테이너선. 그 옆에는 아파트 35층 높이의 크레인이 쉴 틈 없이 쇳덩이를 나르고 있었다. 회색빛의 노동자들은 종종걸음으로 그 밑을 지나간다. 마치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각기 한데 모여 선박이 뚝딱 건조된다.

표정없는 얼굴, 굳게 다문 입. 오로지 기계의 소음만 존재할 뿐

각종 소음으로 조선소 현장은 정신이 없다. 크레인의 경보기 소리, 철판 절단 소리, 용접 소리. 현장에는 기계들이 내는 소리만 존재할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들의 입이 움직이는 순간은 담배 한 개비를 물기 위할 때일 뿐이었다. 소란스러운 밖을 벗어나 선박 내부로 들어오면 상황은 더 열악해진다. 선박 내부는 대부분 밀폐구역이다. 출구하나 없는 곳에 환기될 리 만무했다. 작업하면서 날리는 쇳가루와 미세먼지는 뿌옇게 떠다닌다. 콧구멍과 입술은 바짝 타들어 가고 얼굴은 꾀죄죄해진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기자가 맡은 일은‘ 포설’이다. 선박 내부의 전선을 설치하는 일이다. 포설은 조선소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일로 손꼽힌다. 그렇다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조선소에서 안전한 일의 정의는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낮은 일’, 즉‘ 목숨만은 붙어있을 수 있는 일’을 의미할 뿐이었다. 조선소에서‘ 운 좋으면 전신불수, 나쁘면 사망’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기자가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매일 매일 사고가 발생했다. 같이 일하던 김은철(31)씨는 케이블에 어깨를 강타당해 병원에 실려 갔다. 선임자인 이만수(29) 씨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골절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죽지는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놈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가겠네”

첫날, 배치받은 곳으로 출근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반장은 다짜고짜“ 얼마 동안 일 할끼고”라고 물어왔다. 180cm에 100kg의 우람한 풍채에 기가 눌린 기자는 더듬거리며“ 최대한 오래 할 생각입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놈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가겠네”라고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매서운 말투에선 며칠도 못 버티고 그만둔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불과 이틀 전한 학생이 하루도 못 버티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만수 씨는“ 정이 든 사람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곳이 조선소이기 때문에 신입에겐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며 기자를 위로했다.

등록금, 생활비, 빚 청산... 목표는‘돈’

▲ 사진=사진작가 박현찬 제공

조선소에서는 보통 8명이 한 반을 이루며, 헬멧 색깔로 각자의 지위가 구분된다. 파란색은‘ 신입’, 노란색은‘ 숙련자’, 초록색은 ‘반장’이다. 그중 파란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은 단 3명. 이들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속초에서 거제도까지 온 이대형(19) 씨.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입학금을 벌기위해 조선소에 왔다고 한다. 갓 제대한 이새익(23) 씨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다“. 요즘 국가장학금이 있으니 굳이 조선소에서 일할 필요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반값 등록금마저 부담되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군대를 제대하면 그 누구보다 누리고 싶은 게 많을 이들이지만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 잔인한 것은 어렵게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미래는 밝지 않다는 현실이다. 노란 헬멧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다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이들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일당직 조선소였다. 한 지방대의 영문학과를 졸업한 김한표(31) 씨는 사업 실패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됐다. 포항에서 온 정봉윤(23) 씨도“ 일찌감치 취업은 포기하고 돈이나 벌러 왔다”고 말했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지만, 조선소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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