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야 할 물건이 떠올라 귀찭지만 생각난 김에 집 근처 대형마트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근처라곤 하지만 걷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가까운 애매한 거리. 그래도 버스비는 아까우니 걸어가기로 했다. 열심히 걷고 걸어 도착한 대형마트이건만, 이게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정기휴무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마트 휴무일까지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싶어 기운 센 분노가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르던 찰나, 전통시장과의 상생을 위한 조치라고 하기에 화를 삭이며 내일을 기약하였고, 그렇게 집으로‘ 다시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대형마트 및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영업규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이 제도의 본질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규제해 사회적 약자인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의 상인들을 보호하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의무휴일을 지정해 일부 소비자들의 발길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는 취지이지만 딱히 적절한 방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편의를 해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소비자는 물건을 살 장소, 시간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어졌다. 마트 정문 앞에 도착해서야 오늘이 의무휴업일인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여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겪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우리 집 근처에는 전통시장도 없기때문에 시장에 찾아가려면 마트에가는 것보다 더 큰 수고를 들여야 한다. 또 내게 필요한 물건이 마트에만 있어서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에서 살 수 없다면? 그럼에도 전통시장까지 찾아가라며 누군가에겐 시장보다 가까울 마트의 문을 닫아버리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부작용이 존재한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마트에 납품하거나 마트 내에 입점해 있는 농어민과 업체의 매출 피해 그리고 그로 인해 마트에서 납품, 입점 업체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유통업계의 고용감소 등, 이 제도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또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 3대 대형마트에서만 2013년 한 해 매출이 전년 대비 1조 원이 넘게 감소했고 70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줄었으며, 납품 업체 관계자 200만 명이 모인 한국유통생산자연합회는 매출이 연간 3조 원 감소했다며 생존권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의 사정도 그렇게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휴업일을 피해 대형마트를 찾거나 의무휴업일의 대형마트를 대체하는 구매처로 편의점이나 인터넷 쇼핑몰, 홈쇼핑 등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대형마트 및 SSM에 대한 영업규제의 반사이익이 시장으로 모두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

물론 대형마트를 견제하여 대기업의 횡포와 독점을 미연에 방지할 수있고 지역 자본의 역외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등의 좋은 점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 정책이 내걸었던 슬로건인‘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상생을 도모한다’와는 다르게 한쪽의 살을 도려내어 다른 한쪽을 먹이는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대형마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닌 시장에의 직접적인 지원을 늘려 시장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흥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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