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어 지승호
대표적 진보 지식인 진중권,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국회의원, 공지영 작가, 박원순 서울 시장, 저명한 대중 철학자 강신주,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작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 <이끼>의 윤태호... 위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물론 모두 정치⋅문화⋅사회의 ‘이름 좀날린다’는 ‘핫’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 점 말고도 한 가지 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승호 인터뷰어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승호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이자 유일한 전문 인터뷰어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한 지승호는 지금 껏 이백 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고 서른 권이 넘는 인터뷰 집을 냈다. 지승호를 만난 인터뷰이(인터뷰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도 한결 같이 ‘대한민국 최고’라고 한다. 그럼에도 ‘만두 전문’이 만두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 만두만 파는 가게인 것처럼, 자신도 그저 인터뷰만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해달라고 전하는 지승호. '최고’라는 칭호가 부담스러워 ‘전업’ 인터뷰어로 불리길 바라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를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나. 인터뷰를 하면서 친해진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좋아하면서 두려워했다. 아무래도 인터뷰 하는 분들이 예민한 분들이 많다 보니 사소한 걸로 상처받기도 해서 친해지기도 어렵다. 나도 예민하다고 생각하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상처를 받으시기도 하니까. 나중에 들어보니까 술먹고 밤새 울기도 한다고 들었다.
단행본 작업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자주 만나니까 정서적으로도 가까워지곤 하는데, 성격상 자주 연락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친한 사람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34번 째 인터뷰집 <대한민국 진화론>을 발표했고 지금까지 2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고 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인터뷰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재밌으니까 할 수 있었겠지. 인터뷰어로서의 소질도 있겠지만 특별히 다른 재주가 없기 때문에 꾸준히 하는 것 같다. 팔방미인이 밥 굶는다하지 않나. 그런 사람들은 하다가 힘들면 ‘다른거 해보지 뭐’ 이럴 수 있는데, 나는 ‘뭐 계속 해봐야지’ 하는 거다.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다른 책을 보고 싶다는 식의 반응이나‘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군’ 하는 반응을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의미가 없는건 아닌거 같다.
△인터뷰 인물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나에게도 세계관이랄까 가치관이 있지않나. 우선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정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으면 그 것에 대해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거다. 영화감독이 어떤 상황을 구현하려고 해도 결국 (관객에게) 보여지는건 배우를 통해 보여지는 것처럼. 나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가장 잘 전달할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그래서 예전에는 김규항, 진중권 같은 ‘좌파 지식인’을 많이 만났다.
△어떤 작업이 가장 힘든가
-다 피곤하고 힘들다.(한숨) 영화감독이라고 치면 시나리오 쓰고, 투자를 받으러 돌아다니고, 촬영하고, 후반 작업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 모든 과정들이 또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보면 또 즐겁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물론 그러면서 부담감도 생기지만. 육체적으로는 녹취를 푸는 작업이 제일 힘들다. 그러면서 도 녹취를 40~60시간 정도 풀면 인터뷰 할 때는 이해 못했던 것들,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면서 ‘아 이런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즐겁기도 하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터뷰라는 상황이면 더욱 그럴 것 같은데
-성격이 살갑거나 그러지 못해서 처음부터 물 흐르듯 대화가 트진 않는다. 예전에 만화가 이우일 씨를 만났을 때는 의심을 먼저 하더라. 이 사람이 진짜 지승호인지. 인터뷰 잘 한다고 소문이 많이 났는데 질문하면서 얼굴도 잘 쳐다보지 않는다고.(웃음) 그런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왔다는게 느껴진다. 인터뷰이가 그걸 느끼는 순간 분위기가 좋아지고 인터뷰가 편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말을 듣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 안되는데 나도 사람이라 아무래도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섹시하게’ 기사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번 그렇게 기사를 내고나면 ‘다시는 지승호랑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지 특종을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건 아닌것 같다. 줄타기 같은 거다. 그 사람의 ‘워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의도를 잘 전달을 해야하는데 쉽지는 않다.
△인터뷰, 인터뷰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보는가
-중요한 1차적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사건을 재구성할 수도 있는거고. 예를 들면 김어준 씨가 월드컵 당시 분위기에 열광해서 월드컵에 관한 책을 쓰려고 계약까지 했다가 못썼는데, 그렇다고 나중에 그때의 분위기, 기분으로 책을 쓸 수는 없지않나.
가끔은 이 사람(인터뷰이)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게 아닌가 걱정도 되는데, 인터뷰 자체가 ‘기록’이기 때문에 나중에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크로스체크(대조검토)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10년 전에는 자기가 했다고 말하다가 나중에 안했다고 할 순 없는 일 이니까.
인터뷰 내용 자체로만 보더라도 어떤 사람에겐 ‘힐링’이 될 수도 있고, 하다 못해 ‘킬링타임’용으로 쓰일 수도 있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추천할 만한 일인가
-아직 까지는 출판계에서 인터뷰라는 방식이 책 내기 쉬운 방법으로 보는 것 같다. 인터뷰이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혼자 책을 쓰는 건 힘드니까, 손쉽게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쓰는 방법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일단 기획이 정해지고 나면 빠르면 한 달에서 석 달 정도면 책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걸 재밌는 일이라는 걸 알고도 뛰어들지 못하는 건 돈 벌기가 어려워서가 아닐까. 그러면 난 이렇게 얘기한다. 아직 결혼 안했으면 해볼만하지 않냐고. (웃음)
△인터뷰 해보고 싶은 인물로 베네주엘라의 고 차베스 전 대통령을 꼽은 적이 있는데 앞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예전엔 ‘이 사람 아니면 안 돼’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무리 작업 중인 강신주 선생의 인터뷰 집이 아직 안나왔다. 일단 이게 나와야지 다시 뭐 이걸보면서 허전함을 느끼고 할텐데. 다른 사람들도 뭔가 자기가 하는 일이 있으면 그걸 끝내놔야 다음게 생각나지않나. 거칠게 예를 들면 지금 뱃 속에 ‘똥’이 가득 차있는데 이걸 배설해야 새로운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할까. 처음으로 한 사람(강신주)에 대한 인터뷰 집을 세 권정도 내려고 하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상태다.
△다시 인터뷰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많지. 뭐 진중권 씨나 김어준 씨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아무리 격동적으로 변해도 언제나 그 것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정기적으로 만나고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더라. 한 번은 강준만 선생님하고 다시 인터뷰를 하고싶었는데 그것도 어렵더라. 워낙 바쁘신 분이라 그런지. 하긴 그런식으로 자주 인터뷰하면 지금마큼 책을 ‘생산’하지는 못하실거다. 그런 분은 ‘그냥 책을 쓰게 냅둬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웃음)
△내가 만나고 썼지만 다시 읽어도 새롭다거나 제법 훌륭했다고 자평하는 인터뷰가 있다면
-사실 책을 내고 한동안은 붕 떠있어서 ‘아 이거 참 괜찮은데’ 하는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아 이건 좀 별론데’ 한다.(웃음) 그래도 열심히 했던 것들이니까 괜찮다 싶은게 있긴하다. <PD수첩>이나 ‘좌파 지식인’을 인터뷰한 시리즈가 괜찮았던 것 같다. 물론 다음 번에 나온 책이 좀 더 좋았으면 한다.
△지금 껏 주로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람을 통해 글을 써왔다. 인터뷰가 아닌 방식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원래 처음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그렇게 많이 썼다. 그런데 인터뷰를 오랫동한 하다보니까 지금은 너무 인터뷰에 익숙해진 것도 있고, 아직은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다른사람을 보여주는 일을 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이것 자체가 나름의 공부이기도 하니까. 나중에 ‘이런 얘기를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자연스럽게 할 것 같다. 지금은 내공이나 얘기할 거리나 차곡차곡 쌓아놔야지 싶다. 아마 이러다 영원히 못 할지도 모른다.(웃음)
△인터뷰어가 아니었으면 지금 쯤 무얼 했을 것 같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기타치는 걸 좋아해서 기타리스트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썩 잘 치지는 못했지만 너무 일찍 포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요즘 잘나가는 연주자들보면 기술적인 것 보다 ‘필’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처음 기타리스트가 되려고 한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떤 유명한 기타리스트는 아홉 살에 처음 기타를 시작했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너무 늦은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싫어하실 것 같아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부대신문 공통질문이다. 당신의 20대를 한 마디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그렇고…. 그 때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 확신도 없었고. 사실‘뭘 먹고 살아야하나’ 이런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서른 넘어서 였다.
△정말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사람을 만나고, 그 것을 기록할 것인가
-해야지. 언젠가 허지웅 기자랑 얘기하기도 했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