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소설가 구보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하며 전차를 탔었다. 구보가 박태원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니 그때 구보의 나이는 26살이었다. 23살의 H는 ‘어디가 취직을 할까’ 고민하며 아침 8시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구보가 목적지 없이 전차를 탔던 것과 달리 H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부산대역. 더 정확하게는 부산대학교 제2도서관. 대학교 4학년인 그녀는 이번 학기 두 개의 수업만 들으면 되지만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하철 의자에 앉은 H. 그녀의 눈이 졸음을 못 이기고 점점 감겼다.

“이번 정차역은 부산대”라는 방송 소리에 화들짝 놀란 H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무수히 많은 발걸음이 빠르게 쏟아진다. 순환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 H는 긴 줄을 보고는 방향을 틀어서 정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정문 근처에 오자 그녀는 습관적으로 이솝으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H는 커피를 손에 쥐고 중도로 향했다. H의 오전은 토익과 함께 지나갔다. 점심. 그녀와 벗은 금정회관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녀들은 점심을 먹고 난 뒤라 졸음이 몰려올 것을 염려한다.

 

중도 옆 커피 인 빌리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요” 오전에는 혼자였으나 점심에는 벗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연예인 신변잡기. 점심 후 짧은 이 시간이 H에게도 벗에게도 하루 중 숨을 돌리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망중한(忙中閑) 이랬던가. H는 벗이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은 다시 중도로 들어갔다. 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문자였다. 󰡒오늘 스터디는 3시부터 제이스퀘어에서 합니다. 시간 엄수. 늦으면 벌금” 그녀는 다시 공부에 몰두한다.

오후 두 시 반. H는 중도를 나선다. 스터디는 세시부터지만 그녀는 조금 일찍 나서서 천천히 걷고 싶었다. 봄의 기운과 신입생들의 웃음소리로 캠퍼스가 지글지글하는 듯하다. H는 갑자기 답답증을 느꼈다. 마치 구보가 경성의 거리 한복판에서 격렬한 피로와 두통을 느낀 것처럼. 구보의 통증이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그녀의 통증 역시 시대를 탓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일지도 모른다. H는 무표정으로 자신의 답답증을 숨긴 채 유유히 걸어서 문창 쪽문을 통해 캠퍼스를 빠져나왔다.

 

캠퍼스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페가 줄지어 서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NOHS와 쟈스민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H는 통 유리창에 비치는 이들 중에 반가운 얼굴이 있는지 재빠르게 살펴보았지만, 온통 낯선 얼굴들에 쓸쓸해진다. 천탁을 지나 건널목을 건너자 또다시 카페다. 헤세이티, 구름 나무 등등 한 번씩은 가봤던 카페. H는 자신의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볼 때 학교만큼 많이 간 곳이 카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들-연애, 학업, 친구,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이 모두 카페에서만 이루어진 것 같아 씁쓸하게 웃음 짓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 가고 있는 곳도 카페지. 봄이 불러온 망상인가. 자꾸만 떠오르는 추억들을 뒤로한 채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건널목을 하나 더 건너 제이스퀘어에 도착했다. 제이스퀘어가 있던 자리는 원래 술집이 있던 자리다. 술집이든 카페든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생각하며 카페의 문을 연다. 같이 취업 스터디를 하는 사람 몇몇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H는 이번에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킨다. 구보는 끽다점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가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였다. 구보가 지금 H의 무리가 시킨 음료를 본다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밖에 없구나 생각할 것이다.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라멜 마끼아또. 전자는 졸음을 쫓으려는 자, 후자는 우울을 단 음료를 통해 날리려는 자.

 

스터디를 마치고

H는 다시 부산대 정문으로 간다.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다. H친구들의 하루도 H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은 저녁을 먹은 후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맥주를 마시자니 다음 날 해야 할 것들이 걱정되고 그냥 이렇게 헤어지자니 아쉬워, 간단하게 차나 한잔하자며 또다시 카페로 향한다. 다시 주문대 앞의 H. 오늘만 벌써 4번째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오늘 내로 끝내야 할 자기소개서를 생각해낸다. 졸음을 쫓는 데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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