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특별법 제정 20주년 종합토론회 <성폭력 생존자 법에 말을 걸다>

성폭력특별법(이하 성특법) 제정 20주년 기념 종합토론회 ‘성폭력 생존자 법에 말을 걸다’가 지난달 29일 우리학교 본관에서 진행됐다. 부산성폭력상담소가 개최한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법조계, 여성단체인사들은 성특법에 대해 진단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토론했다.

법률 개정안, ‘인권’보다 ‘신체 안전’이 우선

 

토론회는 성특법 개정을 추진했던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의 개정안 성과보고로 시작됐다. 지난 4월 개정된 성특법에서는 △신체 내부에 손가락 등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를 유사강간죄로 규정한 법 신설 △강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하는 등 성폭력 범죄의 개념을 확대했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 폐지 △음주·약물에 따른 심신장애 감형 배제가 이뤄지며 가해자 처벌도 강화됐다. 피해자 보호와 성폭력 범죄 예방및 재범 방지를 위한 △수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 진술 조력인 제도 도입△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확대 등의 조치도 있었다.

개정과정에서 성특법의 목적이 인권에서 안전으로 전환된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소장은 “친고죄 폐지 등 큰 성과가 있었지만, 법률 제1조에 명시된 법의 목적이 ‘국민의 인권 신장’에서 ‘신체 안전’으로 바뀐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오정진(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체 안전’으로의 법률 목적변화가 사회·구조적 문제를 특정 범죄인의 문제로 개인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에 따라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은 문제”라며 “성범죄의 원인을 잘못된 성인식 등 사회 구조적으로 성찰해보지 않고 단순히 ‘잔악한 범죄자’에게 증오를 돌리게된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허점 드러나…법 신설 요구도 있어

법조계 인사들은 실제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개정법의 허점을 꼬집었다. 부산지방검찰청 문지선 검사는 “성범죄공소 시 상습적 범죄가 아닌 경우 대부분이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가해자 처벌 강화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법률사무소 민심 서은경 변호사는 “일부 가해자들이 합의를 강요하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며 ‘합의’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법 신설 요구도 있었다. 문지선 검사는 “청소년은 누군가가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해도 그것이 ‘성적 착취’임을 모르기 때문에 ‘비(非)동의 간음죄’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를 압도하는 물리적·사회적 힘을 이용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위력 간음죄’ 신설도 요구했다. 현행법에서는 피해자가 성관계 저항 의사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지만 위력 간음죄가 신설되면 가해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끝까지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률사무소 민심 서은경 변호사도 위계·위력 간음죄 신설에 동의했다. 그는 “위계·위력에 의해 벌어진 성범죄도 현행법에 따르면 강제추행죄로만 처벌받는다”며 동의 이유를 밝혔다.

보이지 않는 폭력 ‘잘못된 성 인식’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문은미 연구원장은 법률이라는 구조 아래에서 파생되는 2차 피해의 원인으로 ‘잘못된성 인식’을 꼽았다.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이의 원인을개인의 행동 방식에 돌리는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미순 공동대표 또한 “성 인식에 대한 자기 성찰이 제도적 보완장치보다 우선 돼야 한다”며 이에 동의했다.

김미순 공동대표는 민간성폭력상담소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촉구했다. 그는 “민간상담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국가의 재정지원은 제도적 기관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일반인들의 잘못된 성 의식을 바로잡으려는 활동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전했다.

토론회의 끝자락, 한 중년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라고 소개한 그는 “직접당하고 보니 이제 법을 믿지 못하겠다”며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노력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이에 토론 참석자들은 ‘성폭력과 보이지 않는 폭력 모두와 싸워야 할 때’라며 앞으로의 활동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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