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잔인한 나의, 홈>이 지난달 열린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성범죄 문제를 법적인 장치로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관한 법률(현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의 성범죄와 그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성폭력 특별법은 지난 1993년 국회에서 통과돼 1994년부터 시행됐다. 1980년대부터 부각되던 성폭력 문제가 1992년‘ 성폭력 의붓아버지 살인사건’으로 인해 더욱 주목받았고, 각종 여성 단체가 3년 동안 노력한 끝에 성폭력 특별법 제정에 성공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허복옥 활동가는“성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나아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는 아직도 빈번하다.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1994년(6천 173건) 이후에도성범죄(강간 및 강제추행)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지난해에는 1만9천 670건에 달했다. 한국여성민우회성폭력상담소 이선미 활동가는 “끊임없는 성범죄는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 주변 인물들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성범죄를 은닉하려는 것이다. 지난 7월 발생한 부산맹학교 교사의 제자 성추행 사건과, 뒤늦게 밝혀진 학생 간의 성폭행 사건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학생간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지난 8월 이미 학교 윗선에 보고됐지만, 학교 측은 성폭력상담소에 의뢰해 10주간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 성범죄를 은닉하려 했던 것이다.

성범죄 신고도 분명 늘어나고 있지만, 신고 되지 않은 성범죄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선미 활동가는“ 성범죄 건수는 신고가 접수됐을 경우만을 산정한 수치일 뿐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개인정보 유출에대한 우려 △진술의 반복 △정황 증거로만 이뤄지는 성범죄 수사 등의 부담감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이로 인한 2차 피해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막을 수있는 여건은 여전히 좋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 김향숙 씨는 “성범죄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전했다.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지 20년이흘렀지만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하다. 이제는 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