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덕현 교수

복고드라마가 화제다. <응답하라 1997>이 주목을 받더니, 이어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94>의 인기도 식을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대충 두 가지로 그 비결을 이야기한다. 우선 드라마 내용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향수를 자극하는 배경음악,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 마음속 웅크리고 있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 “그때는 그랬지... 그때가 좋았는데...”하는 묘한 감정 말이다.

우리는 왜 1994년에 열광하는가? 역으로 짚어보자. 사람들이 그 시절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것은 요즈음 들을만한 노래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불후의 명곡, 나가수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은 넘쳐나는 요즘 노래들에서는 도대체 삶의 진정성과 파토스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율동과 멜로디가 ‘한류’라고 부르는 ‘창조’적 ‘상품’으로 미화되어 팔리는 것이 2013년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현주소이니 예전에 그래도 노래가 노래 같았던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결국 사람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현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탓이 아닐까. 현실에서 답을 구할 수 없으니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치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우리의 일상은 공허한 메아리로 가득 차 있다. 암만 물어도 답이 없다. 사회과학자로서 모름지기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여 답을 구하고, 그로부터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안갯속이다. 답이 없다.

국정원이 사이버 공간을 유린하고,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한 대통령 기록을 제멋대로 선거에 이용하는 불법을 저질렀으니 응분의 조치를 취하라고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야당이 농성을 하고, 그리고 기록관리전문가들과 가톨릭 신부들까지 나서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이다. 선거 과정에서 갖은 공약을 남발하고도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마디 말이 없다. 대기업들이 여전히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지만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하기만 하고, 젊은이들이 여전히 취업난에 허덕이며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헤매는데도 상생을 이야기하고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던 사람들은 모른 척이다. 이것이 OECD 국가 중 이혼, 성형수술, 사치품소비, 자살, 청소년흡연, 청소년 교육시간, 그리고 불행지수 등에서 금메달을 딴 대한민국의 2013년 모습이다. 7관왕은 마이클 펠프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응답하라>를 가득 채우는 풋풋하고 정겨운 대학생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은 화석이다. 만약 존재 한다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대학에는 치열한 입시경쟁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이미 탈진한 ‘심해생물’들 아니면 1학년 때부터 토익교재와의 일전을 불사하는 ‘경쟁의 달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20년 쯤 지난 뒤에 누군가가 ‘응답하라 2014’라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올해도 이제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2014년,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이지, 응답하라, 2014년이여,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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