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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우리 귓가에 울리는 라디오
  • 이광영 기자
  • 승인 2013.12.02 19:42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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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deo killed the radio star’ 1979년 영국의 2인조 그룹 버글스가 불러 인기를 누렸던 곡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음악과 뮤직비디오 전문 채널인 미국 케이블채널 MTV가 개국할 당시 첫방송으로 이 노래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며 한물간 라디오의 처지를 표현한 이 곡을 선곡한 것은 너무나도 적절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정말 이 곡의 가사처럼 라디오가 몰락한 것일까?

우리나라 라디오는 1926년 경성방송국이 설립된 후, 이듬해 처음으로 방송됐다. 처음으로 등장한 음성 미디어 매체는 큰 파급력을 가지며 성장했다. 6·25전쟁의 시작과 끝도 라디오와 함께 했다.‘ 오늘 새벽, 북한군이 28선을 넘어 남침했으나, 용감한 우리 국군들이 그들을 격퇴하고 있다. 외출 중인 국군들은 빨리 소속 부대로 귀대하라’ 전쟁이 발발한 사실은 라디오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많은 방송국과 송신시설들이 파괴됐고, 전쟁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부산 방송국이 우리나라 중앙 방송국 구실을 하게 된다.
 
휴전 협정에도 라디오가 관여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유엔군이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전쟁의 양상이 공산 측에 불리하게 전개된다. 이 해 6월 24일, 소련의 유엔대표 말리크가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휴전과 외국군 철수’를 제안했고, 당시 극동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가 이를 수락할 용의가 있음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표명했다. 장영민(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전쟁 당시 이에 관련된 많은 내용이 라디오를 통해 방송됐다”며“ 그만큼 전국적으로 라디오의 파급력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60년대, 라디오는 황금기를 맞게 된다. 방송 수신기 보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라디오는 그 파급력을 더해갔고, 대중문화를 주도적으로 생산하는 매체가 된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등장이 라디오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영상매체는 1970년대 들어 라디오를 압도하는 파급력을 지니게 된다. 윤금선(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는“ 텔레비전 매체는 사람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이용하는 완성된 형태를 갖췄다”며“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라디오 매체는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황금기에 비해 그 위상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라디오는 아직 죽지 않았다. 라디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팟캐스트, 보이는 라디오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수십 년간 안방을 지키고 있는 라디오,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학교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부산대방송국은 1963년 4월, 본관 학생과 사무실 옆 부대방송실로 개국했다. 최초의 오디오 방송은 오전 8시30분부터 9시까지 진행됐던‘ 효원의 서곡’과 오후에 진행됐던 보도 프로그램‘ 효원소식’이었다. 이는 현재‘ 아침을 여는 소리’와‘ PUBS NEWS'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광영 기자  code0maiz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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