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여대생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하던 여대생 참변’과 같은 헤드라인을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변 친구들 역시 영어를 비교적 저렴하게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호주로 떠났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신변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순간 뭔가 잊고 있었던 것에게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도 들었다. 전공 책 어디선가 본,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기든스는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인종을 흑인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인은 흑인보다는 처지가 낫단다. 하지만 아시아인이면서 비정규직이고, 여성이고, 나이가 많다면 이 역시 열악한 계급일 수밖에 없다. 이 말에 따르면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세계화 시대에서 많은 아시아인들은 열악한 지위를 강제로 부여받는다. 

과거에도 오늘날의 아시아인과 비슷한 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이라는 사실 자체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조선인이면서, 공장노동자이고, 여성이던 이들은 삼중고를 겪으면서 노동을 했다. 이에 근로조건 개선과 부당한 처우에 맞서기 위해 여성노동자 강주룡은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다. 그가 저항한 지는 80년이 지났지만,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아직 찰리채플린이 제기한 <모던타임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조선인에서 아시아인으로 수평이동 했을 뿐이다. 사실상 열악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에 노출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피살당한 여대생 역시 돈을 아끼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새벽 세시에 출근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대형마트나 음식점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처럼 일을 하다가 교체당하는 것도, 젊으니까 다 괜찮은 것일까. 

정부에서는 젊은이들의 취업난 해결을 위한 방책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내놓았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취업에 신경 쓰고 있다. 우리학교의 여대생 취업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기 때문이다. 교육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각종 취업 관련한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내놓았지만 참여율이 저조해 지원받은 예산마저 공중 분해될 위기다. 특히 여대생을 타깃으로 한 사업에서도 참여율은 부진하다. 분명 차려놓아도 먹지 못하는 학생들의 소극적인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여전히 부족한 데에는 양질의 일자리는 정해져 있고, 적어서 그것을 향해 달려가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지 학생들이 소극적이거나, 눈이 너무 높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도전정신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필자를 불리한 위치에 서게 만드는 성별, 인종, 연령은 인력(人力)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불리한 조건 중에서도‘ 비정규직’은 백퍼센트 타고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조건 중 하나다. 고용불안을 해결하고 나야 도전정신이 없다느니, 소극적이라는 훈계가 먹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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