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응모된 인문학 논문은 모두 2편이었다. 최근 인문학의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정작 학문적 영역에서의 인문학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인문학 글쓰기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제의식이 선명해야 하고 글쓰는 이의 문제의식 또한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가난과 유한준의 삶, 그리고 문학>은 제목에서부터 전달하려고 하는 바가 선명하지 않다. ‘유한준’이라는 인물의 삶에서 가난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 듯한데, 추상적인 어휘 선택이 이 글의 방향성을 모호하게 해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또한 본문의 구성과 서술에서 ‘가난’이라는 핵심 어휘가 왜 중요한지, 이것이 당대의 문학적 현실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아가 유한준의 삶과 문학이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하는 점 등이 정밀하게 따져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4·3서사와 증언의 (불)가능성>은 우선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다.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최근 활발하게 표상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여전히 배제되고 있는 이중의 타자들이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이 글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그리고 다양한 독서의 흔적이 글 속에 녹아들어 있으며, 텍스트의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관찰력도 돋보인다. 글의 구성도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자신의 논리를 펼쳐 나가는 솜씨 또한 상당히 세련된 느낌을 준다. 다만,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진 것은 분명한 흠결이다. 글쓰기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해야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고, 인문학에서의 글쓰기는 중요한 소통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독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 여성’의 모습에서 이중의 타자를 발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되지만, 그 원인을 ‘가부장제 윤리의식’으로 일반화 시켜버린 점도 아쉽다. 그렇지만 이런 약점들은 이 글이 지닌 여러 덕목들에 비하면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4·3서사와 증언의 (불)가능성?을 최우수작으로 골랐다. 투고자 모두 앞으로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많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간절하게 지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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