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마녀사냥>, <유자식 상팔자>…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썰전> 등 색다른 콘텐츠로 무장한 종편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3사의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따라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편, <마녀사냥> 역시 그동안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소위 ‘19금 코드’를 선보이며, 동 시간대 케이블 방송 최강자였던 <슈퍼스타K5>의 시청률 역시 거뜬히 넘어서며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 프로그램들이 단순히 시청률이 앞서 나가서 이슈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 사이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물론, 인터넷 포털·커뮤니티, SNS 등에서 프로그램이 방송된 직후부터 관련 동영상이 뜨거운 인기를 끌며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이제 종편채널의 프로그램은 우리의 삶 속에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은 종편채널은 뉴스 프로그램 역시 유명 앵커를 영입해 공정성·중립성을 표방하며 시청자들의 인식을 바꿔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들이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대상을 비판하고,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주제들을 자세하게 보도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보도를 하는 채널인 척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편채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9년 7월, 이른바‘ 날치기 처리’라고 불리는 미디어법안은 보수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출의 길을 열어주었다.‘ 날치기 처리’를 주도한 이들은 우리나라의 지상파 방송이 독과점 구조이며, 이에 따른 여론 독과점이 심각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 사이의 벽을 허물어 방송 독과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문 신뢰도의 추락 속에 방송 진출을 노려온 보수신문들이 TV채널을 차지한다고 해서 방송 독과점이 없어지고, 여론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탈리아의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반민주적 통치 행태는 물론, 여러 추문에 휘말리며 복잡한 사생활을 보여준 인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상 첫 3선 총리직을 맡았고, 장기집권에 성공했던 최장수 총리였다. 그가 숱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핵심은 흔히‘ 베를루스코니 현상’이라고 불리는 미디어 재벌의 막강한 여론 장악력에 기반한 정치 지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거의 장악해버린 우리나라의 미디어 시장을 보면, 이탈리아의 이야기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을 현혹하는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앞세워 공정과 중립을 말하면서, 권력에 대한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재밌고 흥미롭다고 해서, 만들어진 과정과 의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좀 더 경계하며 그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한편, 종편채널로 자리를 옮긴 한 유명 앵커는 그가 맡은 뉴스의 첫 오프닝에서 프랑스 <르 몽드> 지 창간자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을 인용하며“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희들의 몸과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지리라 믿는다.”라 말했다. 과연 그가 종편채널에서 진실만을 다루며 돈과 권
력에서 독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그를 저 자리에 앉힌 종편방송의 숨은 속내도 그러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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