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남짓 기자로 생활하며 갖은 역경을 이겨내 왔지만, 여전히 필자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 우리학교 학생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이유라고 한다면, 의견을 물을 때“ 전 잘 몰라요”라며 도망치듯 지나쳐버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 내내 고민한 끝에 기사화를 결정한 중요한 문제이건만,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우리학교 학생들을 보며 맥이 풀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주는 뭔가 달랐다. 총학생회 선거와 선본 공약과 관련해 학생들의 의견이 궁금하다고 말을 걸자, 기대하지 않았던 적극적인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모른다’며 손사래 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 전에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덕분에 이번 주는 가장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인터뷰한 주가됐다. 그러나 기뻐할 새도 없이, 하루 만에 현실을 직시했다. 선본이 공식적으로 공약을 내거는 소견 발표회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나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봤던 것이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시끄럽다’며 비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후보들의 모습을 찍어대던 필자가 괜스레 민망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상반된 학생들의 태도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길에서 인터뷰한 학생과 선거 유세를 무시한 채 지나치는 학생은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일까? 아니, 오히려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인터뷰 당시 만났던 학생들의 경우, 우리학교의 앞날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소견발표회 당시 모습처럼, 정작‘ 학생회’라는 기구가 눈앞에 있을 때 그들은 숨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의 태도를 취한다. 원하는 것은 가득한데, 일단 귀를 막았다가 한쪽구석에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구석’에 불만이 해소될 통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본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실제로 많은 학생들은 이번 선본이 내세운 공약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한 학생의 입을 빌리면,‘ 후보들은 공약이 실현될 수있다고만 말하지, 정작 무슨 공약인지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에 비유하자면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좋은 물건이라며 홍보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소음으로 인식될 수밖에. 공약이 얼마나 좋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지 주장하기보다, 공약과 선거에 대한 관심도부터 높여야 할 것이다.

어느 신입생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학생회에 대한 인식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학생회 일 같은 거 하면 힘들다고 다들 말려서 아예 관심을 끊었어요”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학생회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포기해 버리고 있었다. 학생과 학생회, 이들의 의견이 톱니바퀴처럼 딱 맞게 맞물려 잘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서로 만나기라도 하자. 그래야 서로 어느 부분이 같고, 어느 부분이 다른지 파악할 수 있다.‘ 국립부산대를 구하는 일’ 또한, 일단 학생과 학생회가 만나야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한 해 동안 학생회를 이끌 대표자 투표가 바로 이번 주다. 학생들과 학생회가‘ 제대로’ 만나는 날이 오는 26, 27일이고, 투표율로 나타났으면 한다.‘ 이례 없이 높은 투표율 기록’, 필자가 이번 학기 마지막으로 취재하고 싶은 기사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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