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지난 지면 인물
몸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춤으로 표현하라[인터뷰] 현대무용가 안은미
  • 추슬기 기자
  • 승인 2013.11.25 00:00
  • 호수 1474
  • 댓글 0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만난다고 주변인들에게 얘기했을 때, 나오는 반응은 “아, 나 그 사람 무한도전에서봤어”였다. 이 반응이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찍어둔’ 취재원임에도 공중파 방송 한 번에, 대중적 인기에 편승해 만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취재를 다녀와서 이어진 반응도 한결 같이“ 그 꽃무늬 머리띠 하고 왔니”였다. 인터뷰 당일 (애석하게도) 그는 꽃무늬 머리띠를 하고 오지는 않았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삭발한 머리를 감싸고 있는 형광색 비니, 한복과 가운이라는 퓨전 패션도, 안은미 그 자체라는 인상을 줬다. 그는 의상 뿐 아니라 무대에서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연출을 하기 때문에 ‘칼라시대 첫 주자’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는 독보적인 패션센스만큼, 무용계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에는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감수성도 배어있다. 특히 여성의 문제에 민감하다. 춤을 통해 한부모여성가장을 돕기도 하고, 그의 대표작 <프린세스 바리>에서 두 개의 성을 가진‘ 바리’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억압되어 왔던 성의 문제를 터트리기도 한다.

   
▲ 피나 안 인 부산 프로젝트에서 안은미 무용가와 부산 시민들이 만나 각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취재원 제공)

이런 그가 춤의 예술성 뿐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하는 무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고민은 대중들이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댄스로 이어졌다. 2011년부터 60대 할머니들과 함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사심 없는 댄스>, 중년 남성들과 함께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오는 29일부터 30일 양일간 열리는‘ 피나 안 인 부산’에서도 부산 시민들과 1분 59초의 무대를 꾸린다. 이 무대를 위해 3개월간 고민들을 함께 나눴다. 안은미 무용가는‘ 모든 사람은 교육받지 않아도 춤을 출 수 있다’는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올해 <피나 안 인 서울>에서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점은 누구나 예술성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무대는 그의 무용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산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 안은미의 커뮤니티 댄스 1부작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의 모습이다. 이를 기점으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춤에 대한 고민이깊어졌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구포 시민들 중 60대 이상이 모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사진=취재원 제공)

△의상뿐 아니라 무대에서도 화려한색감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텔레비전은 칼라로 보면서 무대는 왜 흑백으로 보는지 항상 의아했다. 형광색을 쓰면 현실에서 자극되지 않는 뇌파를 자극할 수 있다. 절이나 궁궐의 처마 밑, 성당에서 왜 화려한 색깔을 쓰는지 생각해보면 그 답을 금방 찾을 수 있다. 기운을 주려는 거다. 내 무대를 보고 사람들이 기운을 받아갔으면 했다.

△커뮤니티 댄스를 선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실 새로운 것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술을 특정인이 향유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대중들에게서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꼈다.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뽑아 만드는 것을 생각했다. 각자 본래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감성을 뽑아내는 작업은 우리 몸에 유기농 마켓을 만드는 것과 같다. 안은미는 사실 유기농이 아니다. 농약도 많이 묻었고(웃음).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숨겨진 사연들이 예술가보다 더 절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인류학인 것이다. 내가 인문학자면 그래프로 그리려고 했겠지만, 나는 무용가기 때문에 몸에 기록한다.

△부산에서의 첫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땠나

-이번이 부산에서 첫 공연이었다. 부산 시민들과 협력해 공연을 만들어나 갔는데, 시민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실천해 추진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 스타일이 원래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뭐라고 알려주면 사람들이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부산 사람들은 알려 주지 않아도 필요한 건 알아서 잘 찾아 하더라. 남은 사람들이다 지구력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웃음)

이번 공연을 보면 기존 예술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봇떼기’처럼 흘러나 올 것이다. 1분 59초라는 시간이 함축미가 있어서 결코 쓸데없는 이야기는 안 한다. 그러니까 딱 자기가 말하고 싶은 핵심만 말한다더라.

 

"이제 예술가만 예술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에게나 무대는 열려있다 빼어난 예술성을 가진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참가자들의 삶의 초점이 바뀌는 게 더 중요하다 이 무대를 이해하고 못하고도 관객에게 달려있다."

 

△그래도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려면 통일성이 있어야 할텐데

-이번 프로젝트는 1분 59초 동안 누구나 나와서 무대를 연출하는 것이 컨셉이기 때문에 통일성이라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참여하는 세대도 무척 다양하다. 10대에서부터 60대 할머니까지. 세대마다 고민하는 게 다 다르다. 이걸 모아서 60년의 역사를 보는 거다. 책으로 보면 방대한 것이다. 그 아이템을 찾아낸 게 나다. 각자 무대의 작품성이 있고 없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술성보다는 이 사람의 삶의 초점이 어떻게 변하고,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어가는 지가 더 중요하다.참여자 중에서도 컨셉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다. 1분59초는 당신 것이고, 전체는 내 것이라고. 컨셉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컨셉은 확실하다.

참여자들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것은 무위(無爲)일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가 필요한지 자세히 관찰을 한다. 지금 조언이 필요할 때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냥 내버려둔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다르다. 기운 빠져 할 때 (큰소리로) 파이팅 이렇게 한 번씩 외치는 정도다.

△원래 꿈이 무용가였나

-어릴 때 꿈은 양로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막연하게 사회단체를 꿈꿨던 것 같다. 사회를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예술가가 되었지만 나와 사회는 분리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순수 예술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지만, 예술가와 예술은 역시 사회와 분리돼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예술가가 되어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찾게 해주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칭찬할 때가 내가 예쁘다고 칭찬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고. 그러지 않아도 난 예쁘니까. 내가 해야 될 일은 그들에게 작은 자극만 주면 된다. 그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거나 예술적 감각으로 사회를 살아간다면 더 좋은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내 몸에 만족한다. 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성에 대해 여러 억압들이 작용하고 있다. 게이 친구들도 사귀고, 여러 성과 관련된 퍼레이드에 나가기도 했었다. 우리 사회도 성적인 것에 대해 편견을 깨려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프린세스, 바리>에서 바리 공주를 양성을 지닌 존재로 태어나게 한 것도 이러한 인식을 파격적으로 깨트리기 위해서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줘서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과감하게 깨뜨리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춤을 통해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건가

-예술을 한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기존의 삶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거다. 결혼하고,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매일 집을 나가.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 하는 거지. 예술가가 되면 무엇이든 안정적으로 하기가 힘들다. 이거는 목숨 걸고 해야 되는 거다. 윤리적으로 착하게 키워진 민족들은 힘들다. 이기적이어야 예술가도 할 수 있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만 열심히 즐기면 된다.

△춤으로 현실을 견뎌내자는 말인가

-힐링. 나는 그게 제일 싫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날만 있겠나. 스트레스를 받고 하니까 자극이 돼서 자기 발전도 있는 거지. 히말라야와 같은 험난한 산을 오르면서 저 산만 오르면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저 너머의 산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어쩌 겠어 견뎌내야지. 자기함몰을 겪으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질문의 답을 얻을 때도 있다.

나도 고등학생 때 이 세상이 너무 싫었고, 우리 부모가 제일 싫었다. 왜 나한테 이런 부모를 주셨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굉장히 고마운 일이더라. 10, 20대일때는 모든 게 어렵다. 잘 모르기 때문에 미래도 불분명하다. 견뎌라. 하지만 그냥 견디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으면서 견뎌야 한다.

   
▲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춤동작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 욕망 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는 성숙해진다(사진=취재원 제공)

△당신에게 춤은 무엇인가

-운명 같은 거지. 밥줄이기도 하고. 변명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고. 꼭짓점 같은 거지. 여기서 막 회오리를 한다 해도 결국 춤으로 다시 귀결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오늘날같은 원자가족시대에서도 춤은 공동체를 회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기도 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만들어준다. 춤을 추면, 뭔 줄 알게 될 것이다.

추슬기 기자  union2333@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슬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