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외지역과 문인들에게 꾸준히 지원을 해온 문학나눔사업이 내년부터 ‘우수학술·교양도서 선정 사업’(이하 우수도서선정사업)으로 통합된다. 문학나눔사업은 한국 문학계를 살린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통합 이후에는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문학나눔사업은 우수문학도서를 선정 및 구입해 산간벽지와 달동네, 교도소, 고아원 등 문화소외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무료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한동안 침체돼있던 한국 문학의 회생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문학나눔사업의 업무를 총괄하는 오수연 씨는 “시장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출판 시장에서 작품성 있는 책들이 꾸준히 출판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학나눔사업은 ‘팔리는 책만 계속해서 팔리는’ 문학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영세출판사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왔다. 정부에서 영세출판사의 책을 최소한의 초판 물량만큼 구입함으로써 문학 출판 시장에 안전장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광주의 지역출판사 ‘문학들’ 송광영 씨는“ 국가에서 기금을 통해 일정 부수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 실제로 지역 출판사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출판사 ‘산지니’가 발간한 <장미화분>과 <밤의 눈>등의 순수문학이 2013년 상반기 우수 문학 도서로 선정돼 매출 면에서 혜택을 봤다.

더불어 문학나눔사업은 장래성 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간접적으로 제공해왔다. 송광영 씨는 “이 사업은 대중적인 책만 팔리는 편중을 막고 신진작가에게는 설자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수문학도 서는 신진작가들이 많이 쓰는 순수문학을 주로 선정하기 때문에 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며, 대중적인 장편 소설보다는 시집이나 단편 소설로 등단하는 신진작가들에게 등단의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나눔사업은 우수도서선정사업과 사업목적이 유사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결정에 따라 내년부터 통합 운영된다. 문체부 정태구 씨는 “순수문학 위주로 우수문학도서를 선정했던 기존의 사업에서 학술과 교양분야를 더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작가 단체들의 비난 여론은 거세다. 문학나눔사업이 애초에 지향했던 가치와 그동안 추진해왔던 사업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다. 서울여대 문흥술(국어국문) 교수는 “문학 작품이 독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순수문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도서를 선정대상에 함께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단체는 통합의 문제점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춘 가벼운 에세이 류가 선정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꼬집었다. 문흥술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을 선정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수도서에 문학작품이 선정되기 어렵다”며 “문인들이 독자 취향에만 맞춰 쓰다보면 문학 전체가 침체 상태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책을 지원받는 문화소외계층은 이러한 통합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입장이다. 2009년부터 문학나눔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대안학교 ‘거침없는 우다다학교 허정미 교사는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는 통합의 부작용을 생각하기보다 책을 지원 받는 것 자체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며“ 만약 책 선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현재 이러한 우려에 대해 ‘순수문학 선정을 꾸준히 진행해 한국문학계를 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곳곳에서 실질적인 대책 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3 문학나눔사업의 상반기 우수도서를 선정했던 서울농학교 황선희 사서는 “내년부터는 대형출판사의 책들이 대거 투입되기 때문에, 영세출판사는 분명 영향을 받을 것이다”며 “이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흥술 교수 역시 “우수 도서 중 순수문학 선정 비율을 정해 공시해야 한다”며“ 공정한 심사 또한 책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