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이 창간 59돌을 맞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59년의 세월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부대신문의 명맥을 이어가는 요소는 곳곳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고정란 메아리에서는 변하지 않는 풍자와 위트를 느낄 수 있고, 여전히 존재하는 신간 도서 광고에서 독서를 기본 소양으로 여기는 지성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 부대신문 속 ‘최초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최초의 메아리, 갈구하는 것을 부르짖다

 

‘메아리’는 부대신문이 자랑하는 역사와 전통의 고정란이다. 메아리는 부대신문 23호(1959년 5월 1일) 1면에 최초로 등장했다. 고정란에 대한 설명은‘ 무엇이든 갈구하는 것을 부르짖어 목적한 곳에 미치게끔 외쳐보겠다는 것이다…(하략)’라고 명시돼있다. 최초의 메아리는 두 가지 사안을 다루고 있는데‘, 점심시간에 음악을 틀어달라’는 요구와‘ 화단이 운동장처럼 돼가니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메아리는 학내 문제를 고발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요구가 많은 사항을 공론화하는 고정란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자연보호’나 ‘독서 장려’, ‘학업 독려’ 등 대학생의 기본적인 의무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번 학기부터 메아리는 내용적으로 변화했다. 사안의 범위가 확장돼 학내·외 문제를 모두 다루게 된 것이다. 시의성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부대신문 메아리만의 특성이 사라져 아쉽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번 학기 부대신문 독자평가위원 강병집(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1) 씨는 “굳이 메아리가 아니라도 만평, 사설, 사회면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메아리는 지금까지 묵묵히 그래왔던 것처럼 효원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작은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고정란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간 도서 안내로 시작됐던 부대신문 광고

 

부대신문의 광고는 신간 도서 광고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학내구성원이 발간한 도서만 광고 형식으로 기재됐지만, 부대신문 19호(1958년 12월 15일)부터는 교외 출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최초의 광고는 신간인 <페터카멘진트>, <데미안>, <成年의 秘密>로, 동아출판사에서 판매하는 도서였음을 알 수 있다. 22호(1959년 4월 16일)에는 <세계시인전집> 광고에서 ‘HW1,000’으로 가격을 직접 제시하기도 했고, 29호(1959년 4월 1일)에는 <백만인의 의학>이 최초로 사진과 함께 광고로 실렸다.

책 외 최초의 상품 광고는 의약품과 커피 광고로, 56호(1961년 3월 16일)에 등장했다. ‘두통, 우울, 불면증에… 안심(정)’,‘ 포케트 커-피 문화인의 캬라멜, 해태 커-피 캬라멜’라는 문구와 함께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현재 부대신문 광고단은 신착 도서와 각종 학내 광고, 그리고 채용광고 등의 외부광고로 구성된다.

 

최초의 학생 편집기자는 2003년에 등장

현재 부대신문은 디자인학과 학생 6명이 편집기자로서 조판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편집기자가 신문의 레이아웃을 직접 디자인하고 편집하므로, 취재부터 편집까지 신문의 모든 과정에 학생이 참여한다고 할 수 있다. 강보경(디자인 3) 편집부장은 “대학생 시절에 신문 편집이라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는 디자인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줄이고, 사진 안에 기사 제목을 넣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편집기자가 신문의 디자인에 여하게 된 것은 2003년으로, 비교적 근이다. 이전까지는 디자인회사 (주)모던콤에서 편집을 맡아 진행했지만, 1259호(2003년 9월 1일)부터는 우리학교 학생 편집기자가 디자인한 부대신문이 발행됐다. 1기 편집부장이었던 김태혁(미술 98, 졸업) 씨는 2002년 겨울방중에 디자인컨설팅 제의를 받았고, 노트에 레이아웃을 그려가서 (주)모던콤 작자에게 보여주며 디자인을 했다”며 이후 신문 편집에 의지가 있는 5~6명의 디자인과 학생들이 모여 직접 편집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기 집부 이창민(미술 98, 졸업) 씨는 디자인과 컴퓨터실에 취재 기자가 직접 와서 의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조판작업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들은 “학생 신문을 학생이 직접 편집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뿌듯함을 많이 느끼는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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