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면‘ 노량진섬’에 온 것을 환영하는 학원 간판들과 학원 현수막들이 즐비하다. 학원가와 컵밥 포장마차 사이에 있는 길에는 어김없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큰 가방을 멘 학생들이 학원과 집을 오간다. 길을 걷는 시간조차 아까워 책을 보면서 걷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노량진의 취업준비생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공부하는 기계’였다. 더 씁쓸했던 것은 그들이‘ 인간’이기보다‘ 공부하는 기계’가 되는길을 스스로 원하고 택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장에서 자신을 다잡는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한 줄을 썼고, 생각이 많은 날에는 몇 페이지씩 쓰기도 했다. 까딱하면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끝없는 생각과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또 그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잠깐 멈춰서‘ 의미’에 대해 성찰했으며 삶과 죽음의 의미, 순리를 따르는 삶의 의미,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노량진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저 수업, 밥, 자습을 기반으로 쳇바퀴 돌아가듯 단순한 일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이 보였다. 아니, 그래야만‘ 합격’ 할 수 있기에 그랬으리라.

노량진 사람들에게‘ 왜 공부하냐’고 물었다. 대답은 다양했다. 처음의 의지나 목표와는 다르게 삶에 치이며 살아가다보니 흘러흘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눈을 반짝이며 경찰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매력에 빠져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었다. 공부의‘ 이유’와‘ 의미’를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했다. 
 
우리들도 대부분 일상에 휩쓸려 삶에 대한 침잠(沈潛)의 시간을 포기하고 산다. 학교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인터넷을 하고, 카카오톡을 하다보면‘ 생각’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마르쿠스는 조언한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서‘ 그대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때마다, 잠깐 멈추고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쳇바퀴 흘러가는 삶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잠시 멈춰서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이 내 삶에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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