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치 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매주 목요일 저녁 많은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혀’가 있다. ‘그’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정치로 꽉 막히고 답답했던 속이 시원하게 풀리기 때문이다. 그의 혀는 어렵고 복잡한 시사 정치 사안을 간단명료하게 해설하는 것은 물론, 촌철살인의 비평으로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바로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이하 썰전)에 고정 출연 중인 정치 평론가 이철희다. 그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입학한 정치외교학과에서 열혈 운동권 학생으로 정치와 세상에 눈을 떴다. 그리고 대학원을 마치고 국회의원 비서로 입문한 국회에서 현실 정치의 맛을 봤다. 그 인연으로 지금은 정치와 대중의 가깝고도 먼 사이를 이어주는 정치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대중은 그의 말과 글에서 정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

이철희 소장의 예리하고 재치 있는 ‘썰’은 벌써 많은 시청자를 매료시켰고 정치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딱딱하고 복잡한 것으로만 알았던 정치가 예능처럼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재발견’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의 재발견이‘ 재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온 거리에 정치가 차고 넘쳐야 한다고 외친다. 그가 말하는 정치의 재발견은 무엇일까. 정치가 정말 우리의 일상에 넘칠 수 있을까. 지난 7일 오후, 서울특별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위치한 두문정치전략연구소에서 이철희 소장을 만났다.

 

1964년 출생
1983년 부산 동인고등학교 졸업
1988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
2011년 민주정책연구원 상근 부원장

현) 서울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
현)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현)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고정 출연
현)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진행

△어느덧 이철희를 말하려면 <썰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방송을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방송인으로서 자신을 평가해 본다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무대 위 배우의 역할보다 무대 뒤에서 연출하는 피디의 역할을 주로 해왔으니까. 하지만 무대 공포증을 잘 느끼는 체질은 아니라 처음부터 크게 어렵진 않았다.(웃음) 경험이 쌓인 만큼 방송 요령도 조금 는 것 같다. 사실 정치 평론가로서의 역할이 많은 방송 요령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386세대다. ‘운동권’ 학생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역시 학생회장보다는 참모 역할을 맡았을 것 같다(웃음)

-확실히 그때도 학생들 앞에서 마이크 잡는 역할보다는 뒤에서 시위를 준비하는 역할이었다. 입학하고 1학기 때까지 데모하는 학생들은 죄다 빨갱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주로 읽던 책 30권 정도를 여름 방학 동안 독파했다. 읽어보니 그 친구들이 옳았고 나도 데모에 참가하는 게 맞겠구나 싶었다.

 

△운동권 정치외교학과 학생에서 정치학 전공 대학원생으로 변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당시엔‘ 가투(가두투쟁)’나가서 동트고 구속되고 ‘빵(감방)’에 갔다가 ‘현장(노동현장)’에‘ 위장(위장취업)’하는 게 일종의 공인된 코스였다.(웃음) 그런데 3학년 무렵에 조직으로서 운동을 모두 정리했다. 당시의 운동은 급진적인 혁명을 지향했고 나는 그것이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가했다. 4학년 때인데 마침 입대 시기를 놓쳤고 운동하느라 못했던 공부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리더보다 참모로서의 삶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참모의 매력인가

-어떤 점을 딱 짚어서 매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릴 적부터 <삼국지>를 읽더라도 유비나 조조 같은 리더보다 제갈량이나 가후 같은 참모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삶의 어느 시점에는 그런 기호나 선호에서 진로의 큰 방향을 정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어느 쪽의 역할기준이 나에게 맞느냐 따져봤더니 리더의 역할은 재미도 없어 보이고 솔직히 잘할 자신도 없었다. 굳이 나누자면 참모가 나에게 맞겠다 싶었다. 다만 내가 선호 하는 것은 참모의 기능이다. 참모가 현실에서 취하는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 참모도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길거리에 넘쳐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썰전>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치가 여전히 정치와 대중 간의 괴리가 크다고 보나

-더 심해졌다. 과거에는 민주화처럼 대중이 공유할 만한, 단순하지만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나마 민주화가 달성되고 나서는 그런 과제가 없다. 정치인들이 만들 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부적절한 선거법과 정치관계법도 대중과 정치인의 괴리를 키웠다. 대중이 정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삶에 변화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은 선거 날에만 정치의 주체다. 선거 기간만이 아니라 4년 내내 정치가 길거리에 넘쳐야 하는데 마을과 길거리에서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송이 그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쉽고 재밌게 정치를 다룸으로써 계기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계기의 역할이지, 실 제로 정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의 몫이다.

 

△평론의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정치 평론이 다른 영역의 평론과 다른 특징이 있나

-다른 영역은 평론을 어떻게 하더라도 ‘원작’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평론은 다르다. 평론가가 하는 말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다. 평론이‘ 분석’을 넘어 하나의 ‘정치 행위’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평론은 필연적으로 현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늘 현실 정치판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평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고 격조 있는 논평으로 정평이 났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유우머집’이라도 따로 읽는 건지 궁금하다(웃음)

-화법이나 표현을 따로 연구하지는 않지만 기조는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는 것. 다른 사람의 주장은 나와 다를 뿐이지 그걸 틀렸다고 할 권위는 누구에게도 없다. 물론 사실관계가 틀릴 수 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나와 다를 뿐이다. 결국 공존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주면서 내 주장을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흥분하고 화내면 멋진 표현도 잘 안 나온다. 토론은 복싱 경기가 아니라 장기자랑이다. 상대를 때려눕히고 상대의 주장을 깨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와 나의 주장을 돋보이게 하는 긍정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이걸 판정하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몫이지 상대의 역할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야 설득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 대중은 단순히 저 둘이 얼마나 잘 싸우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다양한 매체와 SNS 등을 통해 정치가 ‘쇼’가 되고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경향도 나타나는 것 같다.

-놀랄 일은 아니다. 대중은 이미 정치를 일종의 스포츠처럼 바라본다. 중요한 것은 보는 스포츠가 아니라 직접 뛰는 스포츠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긍부의 요소가 다 있다. 오늘날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 예능은 대중이 흥미를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재미가 아니다.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방송에 나와서 개인기를 보여주는 정치인이 더 정치적으로 주목받는다면 지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치가 가벼워지고, 예능화되는 것은 예능 피디의 잘못일까, 정치인의 잘못일까. 분명히 정치의 고민 영역이다.

 

△전공인 정치 평론을 해보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8개월가량 지났는데, 임기 초반의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간단하게 평가하면

-아직은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높은 국정 지지도를 볼때 아직은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에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걸고 있다. 그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의제가 뭔가. 북방한계선(NLL) 인가, 선거 개입인가. 그것이라면 실망스럽다. 시대적 소명인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국정 의제로 삼고 그러한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하는데 상관없는 사안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민생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프레임을 짠 책임은 상당수 여권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어떤 거창한 개혁도 먹고사는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실패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 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청구 자체가 잘못됐다. 지금 당장 사법기관이 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크게 두 가지 쟁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먼저 이석기라는 국회의원이 생각을 넘어 실제로 종북 행위를 했는지 여부다. 만약 종북 행위를 했고 그것이 현행법에 저촉된다면 물론 처벌해야 한다. 국회의원 자격도 박탈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단순히 ‘종북’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처벌 할 수는 없다. 생각과 행위는 나눠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이석기의 생각과 행동이 통진당이라는 공당 전체를 대표하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석기 개인은 통진당 전체의 강령이나 지향을 대변한 것인지 규명되지 않았다. 이석기의 내란 음모도 사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최소한 이석기의 잘못을 판단한 후에, 통진당이 여기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었는지를 확인해야 정당 해산 처벌이 가능하다. 그럴 가능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좋게 봐도 앞서 나간 것이다. 헌법적 사안을 현실적으로 집행해갈 때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정치에 막연한 관심은 있지만, 여전히 뭔가 조심스럽거나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없어져야 한다. 정치가 달라지면 대학생들이 정치를 지향한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정치를 인정하고 따른다. 그러려면 정치의 주제가 달라져야 한다. 똑같이 ‘선민의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도덕적인 잣대를 들고 일부 선민과‘ 선민이 아닌’ 집단을 분리한다. 하지만 정치는 도덕적 싸움이 아니다. 소수의 선민이 아니라 ‘다수의 선민’이 타협이 가능한 정치 주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학생들도 정치의 영역에 따라 온다. 지금은‘ 정치적’이라는 말이 욕처럼 쓰이지 않나(웃음)

투표 열심히 하고 정치 현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까이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동아리, 학과 공동체의 의사결정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렇게 일상 속 정치 과정을 주변의 결사체로 정치적 네트워킹을 넓혀가는 노력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정치’가 늘어날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많은 대학생들이 정치 평론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선생의 공도 클 텐데, (웃음) 좋은 정치 평론가의 자질이나 평론가가 되기 위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느 평론이든지 그 영역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정치 평론가라면 당연히 정치를 알아야 한다. 정치사에 대한 이해, 현실정치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다. 그래야 오늘날의 정치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을 할 수 있다. 단순히 기사 몇 개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수준이면 곤란하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바로 정치 평론가를 지망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정치 평론뿐만 아니라 모든 평론의 영역이 갖는 직업적 특성은 어느 정도 경륜이 쌓여야 사람들이 들어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치 평론은 특히 그렇다. 현실 정치판을 잘 모르거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하지 않고 이뤄지는 평론은 위험하다. 따라서 정치부 기자도 좋고 현실 정치와 관련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내공과 경험이 쌓였을 때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

 

△진영논리에서 자유롭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지난 대선 많은 토론 방송에서 특정 진영의 패널로 출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특정 정당을 위해 출연은 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보수 대 진보처럼 큰 이념적 구도에 따른 출연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의 정체성은 정치 평론가다. 정치인이 아닌 이상 어떤 진영이냐 정당이냐를 잴 필요도 없다.

물론 한 쪽에 서는 것을 겁먹을 이유도 없다. 단지 내가 판단하기에 옳은 가치를 지향하고 그쪽에 서는 것뿐이다. 다만 요즘 구도가 나누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는 있겠지. 다만 요즘 라디오 방송을 진행자의 입장에서 출연하다 보니 토론 방송 출연에 신중한 것은 있다. 진행자의 핵심은 공정인데 자칫 토론 방송의 이미지 때문에 편향적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음을 주는 지도자’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조선 초기, 정도전과 이성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이해관계로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맞아 형성된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생각이 맞고 배짱이 맞아야 오래가는 것이다. 결국 마음을 얻어야 한다. 삼국지에도 공심위상(攻心爲上)이란 말이 있지 않나. 물질적인 것을 줄때보다 마음을 줄때 양질의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돈을 떠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제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와 참모, 지도자와 국민은 대등한 관계가 돼야 한다.

 

△당신의 20대 혹은 삶의 전반을 관통한 화두가 있나

-화두라… 글쎄, 굳이 말하면 내가 관심을 갖고 해온 일이 있으니 ‘정치’가 아닐까. 어떤 사람을 흔히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이런 식으로 나누곤 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불리길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민주주의자’다. 나와 생각이 다른 건 이해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은 안 된다. 정치를 통해 ‘질 좋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요건만 충족시킨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도 형태가 다양한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수가 가난한 민주주의다. 양극화가 심하다. 다수가 행복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부자민주주의에서 서민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물론 이행하는 방식도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행할 수 없다. 정치가, 민주적인 정치가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소수에 의해 전유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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