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이라고 했다. 18세기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등장한 이 레토릭은 삶의 신산과 궁핍에 대한 핍진한 촌철로 오래도록 사용되었다. 그리고 2백 여 년이 흘렀다. 20세기 이 땅의 문인들은 세월의 더께를 얹고도 여전히 유효한 이 은유를 현재형으로 번안하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절실하고 더 녹록찮은 문제로 옮겨갔다. 빵에서 방으로‘, 지상의 방 한 칸’을 말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지상의 방 한 칸’이라고 말한 이는 박영한이었다. 집필 공간을 찾아 변두리를 이 잡듯이 훑어낸 끝에 간신히 한 평 반 정도의 다락방 한 칸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자전소설의 제목이었다. 이후 김사인과 최금진이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제목으로 시를 발표했고, 그 시차 사이에 김중식이‘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썼다. 최연소 수상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고 있는 김애란은 단편집 <침이 고인다>에서 고시원, 독서실, 반지하방, 다가구주택, 여인숙 등의 작고 누추한‘ 방’을 이야기했다. 차창룡이 ‘고립된 성채’, 박민규가 ‘관’, 김미월은‘ 동굴’이라 명명하며 거듭 호출한 곳은 고시원이었다. 언급한 작가들 외에도 허다함은 당연하다. 주목할 것은 시와 소설에서‘ 방’에 대한 천착이 집중된 것은 2천년 대의 일이라는 점이다. 예민한‘ 카나리아’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시대의 병리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빵’에서‘ 방’으로의 이동은 빵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여전히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결핍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 결핍의 극단에 대학가가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