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라는 뜻으로, 그저 유쾌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녹록찮은 우리네 현실을 짚어낸 문화 키워드라 한다. 대중들의 정서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반영하는 것이 TV 프로그램이니 요즘‘ 웃픈’ 현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개그프로로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령 주말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개그콘서트>의 유머 코드는 단연 이 슬픈 웃음이다. 인기 없고 촌스럽고 키 작고 뚱뚱한 남자들이 영락없이 루저의 조건이 되고, 서울 입성과 서울사람 되기가 성공을 위한 지상과제가 되고, ‘나쁜 사람’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범죄 권하는 비루한 현실이 풀려나올 때, 개그프로가 유발하는 웃음 앞에서 우리는 너나없이 아프고 불편해진다.

요즘 대세 드라마라는 <직장의 신>은 또 어떤가. 천만 비정규직의 처절한 생존사를 보는 일이란 서글프다 못해 차라리 끔찍하다. 발버둥치고 목매달아도 정규직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희귀한 일이 된 현실도 그러하지만, 그 괴물스러운 사세를 환멸하며 선택한‘ 미스 김’의 슈퍼 비정규직 되기는 더욱 고통스러운 대면이다. 무려 120개의 자격증을 보유한 이 무한능력의 비정규직이란, 실은 웃픈 현실에 딴죽을 걸기보다 그에 투항한 과잉 표상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부당한 위압에도 토 달지 않는 비정규직들뿐 아니라, 정규직 위의 비정규직 미스 김 역시 세상을 바꾸기보다 자신을 바꾸기를 결정한 것은 매한가지다.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기보다 세상에 완벽히 적응하라는 이 시대 생존진리를 150% 내면화한 미스 김의 성공기가 통쾌하기보다 되레 씁쓸한 이유다.

생각해 보면 요즘 대학의 지상 목표 역시 군말 없이 성공에 올인하는‘ 정규직’이나 미스 김 같은 화려한‘ 슈퍼 비정규직’ 양성하기가 아닌가 싶다. 취업이 성공한 생의 유일한 척도가 되고, 취업률이 대학 평가의 지고한 조건이 된 상황에서 이 기막힌 현실에 대처하는 대학들의 자세는 역시‘ 바꾸기보다 적응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세상을 의심하는 법보다는 세상에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기술을 학생들에게 훈육하며, 웃픈 현실에 개입하는‘ 비판적 지식인’이 아닌 생계지향의‘ 순종적 직업인’을 양산하기에 진력한다. 거꾸로 가는 세상과 담합하려는 대학의 이 비뚠 처세 속에서 학생들 역시 대학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듯하다. 더욱 참담한 것은 어쩌면 이 청춘들의 방황이‘ 바꾸기보다 적응하라’는 세상의 지령을 수락하는 것으로 끝내 귀결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대학의 의미 따위 묻지 않으며, 학문의 가치를 고민하지 않고, 세상의 온전치 못함을 사유하지 않으며, 제 속에서 솟구치는 의구심이나 불안은 흔한 힐링 서적들 몇몇으로 애써 누르고, 오직 취업성공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조로한 젊음들의 범람. 차마 웃지 못할 이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에 무력하게 편승하기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브레이크를 당겨야 할 때가 아닐까. 청춘을, 아니 인간을 총체적으로 박탈하는 이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은 위대한 그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는 나와 당신일 것이며‘, 다른’ 세상의 도래는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이러한 우리의 열망이 모이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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