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에서 출발하는 학내 셔틀버스를 이용하다보면 새치기하는 학생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아홉시 첫 수업을 10분 정도 앞둔 바쁜 상황에는 매번 그런 학생을 볼 수 있다. 새치기를 하는 학생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파렴치한 행동에 대하여 제지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줄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새치기를 보고 입을 삐죽 내밀기는 하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없다. 나도 이전에 새치기를 했으니까 다른 사람의 새치기도 봐준다는 일관성의 발로인가. 아니면 새치기 한두 명 때문에 버스를 못타고 갈 정도는 아니니까 그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는 식의 호연지기인가. 자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 정도의 부조리는 눈감아 주는 편이 좋다는 생각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학생이라면 생업에 목을 맨 소시민과는 다르게, 정의로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면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공동의 문제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단기간의 안정에는 개인주의가 당장 효용이 될 수 있지만, 개인주의의 확대는 궁극적으로 이웃은 물론 자신에게도 손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학교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효원굿플러스 문제도 앞서 말한 새치기 참아주기와 같은 맥락에 있다. 효원굿플러스가 무리하게 추진될 즈음, 학내 일부 교수님들이 그 성공여부와 배경을 의심하였으며, 몇 분은 공개적으로 전임총장과 그것을 기획 추진한 집행부를 질타했다. 그러나 당시 상당수 학내 구성원은 그런 논쟁을 자신들과는 무관한 몇 세력의 권력다툼 정도로 환치하여 애써 외면하였다. 넓은 주차장이 지어지고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에만 박수를 칠 줄 알았지 그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효원굿플러스의 태생적 한계와 절차상 불법에 대한 정당한 항의를 특정 학내세력의 모함이라고까지 공격한 사람도 있다. 더하여 전임 총장은 그러한 공격이 학내 좌파세력의 정치선동이라는 식으로 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캠퍼스 부지대금으로 당연히 갚아야 할 돈을 연구독려라는 미명하에 맘대로 집행했다. 그러한 과정에 우리 대부분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동조하였다. 나에게 당장 문제가 되지 않으면 별 문제없다는 개인주의적 행동은 8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는 이 과정을 중간에서 막지 못하고 방조한 감사원, 불법적 과정을 묵인한 교육당국, 그리고 전임 총장과 그에 참여한 집행부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우리는 모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끝까지 책임을 추궁해야할 것이다.

개인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호도하고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갈수록 심회되는 지역 홀대정책에 대처하고 우리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서 모든 효원인은 개인주의에서 작은 이익에서 벗어나 힘을 모아야 한다. 전체를 희생해서 개인적으로 얻는 작은 이익은 결국 엄청난 부채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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