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째였다. 지난 8월부터 두문불출하던 총학생회(이하 총학) 최소정(특수교육 4) 회장의 잠적 사건은 그의 사퇴로 일단락 맺는 듯 하다. 그러나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사퇴로 해결될 문제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이 바랐던 것은 납득할 만한 이유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몇 줄에 불과한‘ 사퇴서’가 전부였다.

총학생회장의 부재로 총학생회의 각종 사업과 의사결정 등이 차질을 겪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예진(독어독문 10, 휴학) 부회장과 남은 집행부들이 그 공백을 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지만, 대내·외 적으로 총학생회장 없는 학생회의 의사 결정력과 추진력은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역시 석연치 않은 점 투성이다. 총학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 8월 초부터 이미 정상적인 회장직 수행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학과 최 회장은 석 달이라는 기간동안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사퇴문에서 언급된‘ 집안 사정’과‘ 개인 사정’이 단 한 번이라도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조차 불가능할 정도 였을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 회장의 잠적이 총학의 공식적인 행사에만 한정된 것이었다는 점을 볼 때 의혹을 거두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개강 이후부터 학교 안팎에서 최 회장을 봤다는 목격담도 많다.

‘아홉줄 짜리’ 사퇴서 한 장만이 덩그러니 남은 이번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총학생회장이 몇 달간 잠적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학생도, 알았더라도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총학을 비롯한 학생사회 위기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누구도 총학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학생사회’라는 공동체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어쩌면 이미 학생사회는 몇몇‘ 운동권’ 학생들로만 채워진 실체가 불분명한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의 부재를 느끼지 못한 것은‘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당연’이라 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총학의 이러한 행태가 고착화된 불신을 더욱 키우는데 기여할 뿐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는‘ 술래없는 숨박꼭질’. 이 역설적인 표현이 총학생회장 잠적 사건의 전모를 함축한다. 총학과 학생사회 위기의 원인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학생회 내부에도 있었다.

그러나‘ 엄중한 시국’에도 사건의 당사자 격인 학생회 임원들은 성급히 미봉책을 내놓고 있다. 회칙을 몰라 휴학생 신분으로 활동했다는 부총학생회장과 일부 단과대학 회장의 재신임이 대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된 것이다. 사실 투표라는 절차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투표에 대한 공고도 없었고 절차도 불투명했다. 회칙에 규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수렴한 대의원들의 의견은 참고사항이지 재신임을 결정할 수는 없다. 결격 사유가 있는 부회장과 일부 중앙운영위원이 임의로 실시한 투표 결과에 따라 이들이 재신임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구성을 포함해서 회칙 재정비 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물론 불편하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귀찮고 불편하다고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하는 온정주의도 학생사회 재건을 위한 해답은 아닌 듯 하다. 이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시 학생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총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회의적이지만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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