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망했구나’하는 냉소였다. 이석기 사태 이후 관련 정파에 복무하는 학생회 간부들을 바라보며‘ 너도 망했구나’했다. 사실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학생자치기구들이 무너지고 있고 학생사회 자체가 황폐해 지고 있다는 것. 신문사와 교지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앞서 말한 간부들은 통쾌해하겠지만,‘ 희망연대’라는 뉴라이트 계열 학생회마저도 철수했다는 것. 

현재의 경북대학교의 상황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해체 이후 제기되는 학생회의 위기라는 문제를 뛰어넘어 학생사회의 막장까지 와있다. 이는 학생회 토양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대구·경북 소재 대학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학생회비가 40%도 걷히지 않고 심지어 과학생회까지 제때에 못 세우는 등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학생회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왜 학생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 제대로 망하기 위해서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요구와 이해를 담지하는 기구다. 결국 학생회가 상정하고 있는 학생 대중의 생각이 중 요한 것이다. 2005년 한총련이 규정한 대학생의 3대 정신을 살펴보자. ‘도전정신’과 ‘더불어 사는 정신’, 그리고 무려‘ 창조정신’이었다. 마찬가지로‘ 88만 원 세대론’부터‘ 20대 개새끼론’까지 최근의 20대 담론들은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20대를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고덕영 씨는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20대들에게는 연대의 갈망도, 절벽으로 밀어내는 사회현실에 대한 울분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 이유로 절벽에 떨어졌더라도 그것은‘ 타당하다고’ 이해하고 그 와중에서도“ 내가 몇 등으로 떨어졌지?”를 묻는 비교와 자기계발로 전이된 20대의 존재론적 윤리를 들 었다. 
 
이어 고 씨는“ 이러한 주체와 80년대의‘ 청년학생’을 등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세대론이 은연중에 가정하고 있던‘ 진보적인 20대’는 이 지점에서 파탄난다.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기를 꿈꾸었던 80년대의 정치적 주체로부터 너무도 멀리 나아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통념 속에 남아 있던‘ 진보적 20대’의 해체로 기존 학생회 조직의 재편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생회에 남아‘ 자주적 학생회론’이니 ‘네트워크 학생회론’이 고민하는 친구들은, 그것이 비록 386세대로의 감정이입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어쩌란 것이냐! 
 
그래서 학생사회가 무너진 가운데 학생집단의 정치주체화 필요성이 제기되는 지금 이 순간, 과도기적인 재편과정의‘ 망해가고 있는 학생회’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주인공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의 물음처럼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사라져야 하는가?, 어떻게 망해가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학생회들의 역할이나 시대적 의미는 아닐까? 
 
마지막으로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류한수진 회장의 물음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입으로는 소비에트니 민중권력이니 진정한 민주주의니 운운하면서, 대중에겐 요식절차로 도장만 받고 대표라 행세하며 학생회의 권위만 빌려 쓸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학우 대중의 권익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소리는 그만두고 솔직하게 엘리트들끼리 하시라!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학생이라는 집단이 정치의 주체가 된다면 그것은 어떤 문제에서, 어떤 입장에서, 어떤 기반 위에서야 하는가? 거기에서 학생회가 왜 필요한가? 그 필요성에 맞는 학생회는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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