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 불린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속적이고도 성공적인 개최, 부산 지역 영화 인프라의 구축 등 제반 요건들이 갖춰진 것도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무엇보다 부산 시민들이 보여주는 야구 못지않은 열렬한 영화 사랑이 그와 같은 호명을 이끌어 낸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부산 영화’라는 지역적인 장르 명칭마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부산, 나아가 지역을 재현(representation)한 영화들은 부산적인 그 무엇, 혹은 지역적인 그 무엇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개연성 있게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부산은 하나의 전형(type)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부산적인 그 무엇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이미 굳어진 이미지로서의 부산성(釜山性)만을 반복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아마도 부산적인 인물과 장소로서의 이미지를 가장 강력하게 굳힌 영화는 <친구>(2001)가 아닐까 한다. 때 묻지 않은 과거의 순연한 이미지 위로 의리와 주먹으로 상징되는 폭력적인 남성성이 오버랩될 때, 이 영화가 재현하는 부산은 70년대의 촌스러움과 2000년대의 어두운 뒷골목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의미심장한 것은 깡패들의 의리와 배신으로 요약되는 이 이야기가 유일하게 부산을 떠난 모범생 상택(서태화 분)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의 나레이션은 카메라의 시선과 등치됨으로써 부산을 바라보는 단일하고도 객관적인 해석자의 언술이 된다. 그리하여‘ 주관=지역(부산)=텍스트=폭력=감성/ 객관=중앙(서울)=해석자=응시=이성’의 이분법적 구도를 구축한다. 그렇게 부산을 강렬한 남성성과 언제든 회귀 가능한 낭만적인 모성성이 결합된 무중력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데 타당성을 부여한다. 요컨대 <친구>는 부산을 연대기 순으로 기술하되, 타자(해석자)의 눈에 비친 부산이 되게 함으로써 부산적인 그 무엇과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를 진술한다.

부산을 재현한 영화 <해운대>(2009)에서도 부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아예 서울에서 온 김휘(박중훈분)·이유진(엄정화 분)과 부산 토박이 최만식(설경구 분)·강연희(하지원 분)를 날카롭게 구분한다. 전자가 엘리트적이고 세련되며 이성적이라면, 후자는 무지랭이에다 촌스럽고 감정적이다. 영화는 최첨단 대도시의 스펙터클한 파국을 재현하면서도,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재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앙-지방의 이분법에 전제된 인물들은 천 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쓰나미처럼 재현되면서, 중앙-지역을 ‘대표(representation)’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많은 영화들에서 지역은‘ 중앙’으로 가정되는 특권적인 해석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편되어 그것이‘ 자연’인 양 가정되고 있다. 지금 개봉 중이거나 앞으로 개봉될 영화라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역이 배태하고 있는 수많은 잠재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가 존재하지 않는 한, 영화에서 한국식 버전의 오리엔탈리즘은 계속될 것이다. 지역을 말하되 지역은 없는, 지역을 재현하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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