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타주]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

 

지난 2일, 약 4개월간 중단됐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공사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호소문 발표와 함께 재개됐다. 지난 5월 공사가 재개됐을 때보다 더욱 격해졌다. 이에 지난 10일, 기자는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는 밀양시 4개 마을을 찾아갔다. 태풍이 모두 휩쓸어 간 것일까, 네 곳의 마을 모두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주민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마을회관에는‘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는 현수막만이 외로이 펄럭이고 있었다. 

▲ 동화전마을 마을회관. 주민들은 없고 송전탑 건설 반대 현수막만 걸려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경찰의 방패가 현장을 감추다
처음으로 찾아간 단장면 동화전마을은 평화로웠다. 95번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는 이곳은 태풍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됐고, 이에 따라 주민들과 공권력의 대립도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밀양은 태풍 덕에 조용한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평화롭지는 못했다. 마을회관에 주둔하며 밀양 전역을 취재하던 엔티엠뉴스 서유석 기자는“ 송전탑 관련 논란과 대치는 모든 공사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현장마다 1개 중대 이상의 경찰력이 동원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태풍으로 인해 소강상태에 있는 동화전마을을 뒤로한 채, 가장 격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도방마을을 찾아갔다. 도방마을로 들어서는 길가 양쪽에는 9대의 경찰버스가 늘어서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26번 송전탑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찰의 저지선이 있었다. 다행히 1차 저지선은 기자증을 제시하며 통과했지만, 이내 경찰의 손에 이끌려 쫓겨났다. ‘외부인의 출입은 통제하고 주민들은 통제하지 않는다’는 경찰의 말조차 사실과는 달랐다. 서종범(밀양시 부북면, 55) 씨는“ 경찰 측에서 외부 사람이 찾아오면 밀양 주민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주민들 또한 현장출입을 통제당해 시위현장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 실상”이라고 주장했다.

▲ 도방마을로 들어서는 길가 양쪽는 9대의 경찰버스가 늘어서 있다

여러 수단을 강구해봤지만 경찰 저지선을 통과하지 못한 기자는 상동면 여수마을로 향했다. 124번 송전탑이 건설되는 이 조용한 마을에서 마을회관을 기웃거리던 기자를 목격한 한 할아버지는“ 모두 시위하러 갔다”며 “기자는 현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충고한 뒤 건설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할 수 없다는 말에 돌아가려던 기자는, 마을회관 앞에 주차된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밀양시보건소 관계자를 발견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에서 파견됐다는 이들은“ 현장에 응급차가 대기하고 있으니 우리는 2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주민들을 위해 현장에 파견됐다는 공권력은 만일의 사태보다 잠을 더 우선시하고 있었다. 더 이상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태도에 기자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외부세력은 너희”, 폭력을 일삼는‘ 민중의 지팡이’는 필요 없다
해가 질 무렵, 기자는 127번, 128번, 129번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는 부북면 평밭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비석뒤에는 경운기가 버티고 서 현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었고, 그 뒤에는 나무 사이로 밧줄이 겹겹이 처져 있었다. 밧줄 위에 위치한 움막에 있던 이도운(밀양시 부북면, 62)씨가 기자를 경계했고, 신분을 밝히고 나서야 안심한 듯 기자에게 출입을 허락했다. 이도운 씨는“ 한전이나 경찰 측이 불시에 찾아와 우리를 밀어내려 한다”며“ 이를 막기 위해 항시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 무덤’으로 유명한 127번 송전탑 건설 현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현장에는 처음 보는 기자를 향해 짖고 있는 개와 주위를 경계하는 사람만이 눈에 띄었다. 경찰의 야습에 대비해 망을 보고 있다던 환경운동연합 김준열 씨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시민단체들이 언론에 의해 외부세력으로 규정된 상태라 행동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남우 주민대책위원장은“ 밀양 주민들에 대한 애정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는 이들이 어떻게 외부세력이 될 수 있나”라며“ 국가 주도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을 내쫓고 폭력을 일삼는 경찰과 한전 측이 진짜 외부세력” 이라고 분개했다.

기자가 무덤 옆에 세워진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 할머니들이 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손희경(밀양시 부북면, 78) 씨는“ 경찰이 불시에 현장에 찾아올까 무서워 자리를 떠날수 없다”고 말하며 현장에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움막 안에서 24시간 생활하는 할머니들은 현장 주위에서 얻은 밤과 여러 시민단체에서 지원한 물품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하루 종일 현장을 돌아다니던 기자도 할머니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식사를 함께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할머니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던 도중, 한 사람이 움막 속으로 들어왔다. 시위 현장 세 곳을 둘러보고 돌아왔다는 한옥순(밀양시 부북면, 66) 씨는“ 경찰차 10대가 날 잡으러 오는 것을 피해왔다”며 한숨 쉬듯 말했다. 이어 한 씨는“ 현장도 아닌 곳에서 시위와 상관없는 할아버지의 목을 조르고 팔을 꺾는 것이 경찰이 할 일이냐”며“ 한전과 경찰은 나이 많은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얘기를 듣고 있던 권윤한(밀양시 부북면, 84) 씨도“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겨야 하는데”라며“ 기자들 출입을 막는 이유가 이것(사진) 때문이다”고 씁쓸해했다.

현장을 뒤로한 채 부산으로 향하던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싸움할 때 죽어야지 지금 죽으면 억울하다’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싸울 시간은 준비하되 죽을 날짜는 중요히 여기지 않는 것일까, 할머니 들의 움막 속에 시계는 있지만 달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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