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광주와 인천의 중소 상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 앞에서 “지역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상도를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의  위협 앞에 서 있다. 필자가 사는 조용한 동네도 얼마 전 들어선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아침 등굣길이면 20대 아르바이트생이 좁은 도로를 가르며 상품을 운반한다. 그 건너편에는 두 달 전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개점과 함께 문방구로 업종을 변경한 예전의 까치 슈퍼가 있다.
 

   대형마트의 지역공습에 이어 작년부터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강타한 대형마트의 위력에 지역의 재래시장들은 줄줄이 쓰러졌다. 최근 대형마트의 수가 최대에 달하자 대기업은 동네 골목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테스코에서 운영하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전국에 현재 160여개, 롯데슈퍼는 140여개 점포를 건설했다. 또한 롯데슈퍼는 400여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신개념 기업형 슈퍼마켓까지 등장했다.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은 유기농 및 친환경 상품과 수입식품을 다루는 고급 매장을 개점했다. 그러나 일반 슈퍼보다는 크고 대형마트보다는 작은 기업형 슈퍼마켓과 규모가 비슷하며, 무엇보다 골목 상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커 지역 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거대 자본의 폭풍에 영세 자영업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90년대 말 기업구조조정에서 회사 밖으로 퇴출된 이들은 퇴직금으로 저마다 슈퍼와 치킨 집을 개업했다. 경제 성장 논리에 생산 효율성이 낮은 사람들은 튕겨져 나와 현재 영세 자영업자 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용산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한 상인의 말처럼 그들은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거대 슈퍼마켓 입점으로 가게를 사려고 하는 사람도 없어 권리금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형 유통점이 무차별적으로 지역 시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법은 현실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유통산업발전법은 3000㎡ 이상 대규모 점포만 규제해 1000㎡~3000㎡ 미만 규모의 기업형 슈퍼마켓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민심탐방 나온 대통령은 기업형 슈퍼마켓의 공포를 호소하는 상인에게 “인터넷 쇼핑몰 만들어 경쟁력 갖추면 될 것”이라는 기막힌 대처법을 내놓기도 했다.
 

  빗발치는 여론 속에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슈퍼마켓 프랜차이즈’이다. 이는 동네 슈퍼마켓이 대기업으로부터 영업 판매권을 얻어 기존의 골목상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프랜차이즈로 전환한 동네슈퍼는 더 강력한 자본의 힘으로 또 다른 영세 슈퍼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자본이 없어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전환이 불가능한 영세 상인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김경배 슈퍼연합회 회장의 말처럼 자본의 권력 아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프랑스는 300㎡ 이상의 대형마트 입점시 엄격한 허가절차를 요구하고, 재래시장이 있는 지역에는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기 위해서 개설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영업시간과 영업품목을 제한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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