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7돌 한글날에 부쳐

‘보그 병신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지난 삼일절 오전, 한‘ 패션 큐레이터’가 영어나 불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고 토씨만 한글로 적어놓는 국적불명의 언어와 이를 남발하는 이 나라 언어습관의 사대성 혹은 허영기에 대해 비판한 글 때문이었다. 예로 든 문장은 이런 식이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이후‘ 문필종사자’들의‘ 반성문’에 가까운 글이 이어졌지만, 오늘 펼쳐든 신문에서‘ 병신체’로 쓰여진 기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지적했듯 이런 병신체는 <보그>라는 한 패션 잡지만이 아니라 여행음악미술영화 관련 매체에서 두루 ‘통용’되는 문체이며, 나아가 학계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나의 텔로스는 리좀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시니피앙” 운운의 ‘인문 병신체’를 낳고 있다. 대개 언중(言衆)의 언어습속을 반영하고 때로 결정짓기도 하는 역할이 언론과 학계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정부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라는 이의‘ 어륀지’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나긴 했지만 사실 우리의 언어 환경은 이미 충분히‘ 이중적’이고, 때로 다중적이기까지 하다. 영어의 지위는 한글을 압도한 채 공용(共用)되며, 번번이 공용(公用)된다. 공기업조차 서둘러 자사의 이름에서 한글을 빼버리고 그 자리에 알파벳을 들여놓았으며, 오롯이 영어로만 된 정식 행정 구역명이 등장한 것도 오래전 일이다.‘ 해운대 센텀시티 내 오르듀 레지던스’같은‘ 난해한’ 주소를 갖게 된 건 관의 역할도 혁혁했다. 적어도 지명에 관한 한‘ 병신체’를 일상적으로 쓸 여건이‘ 민관 합작’으로 충분히 조성된 셈이다.

과도한 언어민족주의는 물론 어리석고 또한 위험하다. 영어건 불어건 가져다 쓸 수 있어야 하고, 그 포용력이 한국어를 크게 살찌운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런데 현실의 한글은 어떤가. 무차별적인 외래어 사용에 밀려 포용은커녕 토씨로 전락할 기미가 뚜렷하다. 곧잘 문맹률 1%를 자랑하지만 문서해독능력을 따지는 실질문맹률은 OECD 가입국 중 꼴찌라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는 우리 시대 언어 지형도를 여실히 말해준다. 반상회 공고문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이 소화불량의 낱말들을 꾸역꾸역 수입해서 아무데나 갖다 쓰는 형국 아닌가.

경제성을 앞세워 자발적으로 외래어를 ‘강제’한 이런 언어 환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연로한 영어문맹자일 것이다. 이제 기초적인 영단어를 모르고선 생활에 필수적인 정보조차 얻기 힘든 지경이다. ‘블랙아웃’ 예고와‘ 바우처’ 안내를 멀거니 쳐다만 보는‘ 언어적 약자’층의 고충은 왜 헤아리지 않는가. 대중의 언어감각과 괴리되어 비아냥을 사기도 하는 국립국어원의 순화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글의 탁월함은“ 사람마다 수비니겨 [쉽게 익혀]” 쓸 수 있다는 점이고, 세종의 위대함은 “어린[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불쌍하게] 녀겨” 언어적 소외층을 없애려 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대표 공약인 기초고령연금까지 대폭 후퇴시켜버린 이 정부에‘ 언어 복지’를 묻는 일은 아둔한 짓이겠지만,‘ 병신체’를 무감하게 남발하는 우리의 말과 글은 돌아볼 일이다. 공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을앞두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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