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담담한 문체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고발하는 책과 홀로코스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옥의 끝자락에서 울려 퍼지는 야상곡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저/2002/황금가지

이 책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어느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수기이다. 그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바르샤바의 끔찍한 유대인 학살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스필만은 독일군에게 폴란드가 함락된 이후, 유대인 강제 거주 지구인 게토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들은 결국 가스실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고 스필만 혼자 구조를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게토에서 탈출한 그는 죽어가는 도시에서 절대적인 고독과 굶주림을 견디며 독일군을 피해 겨우 살아남는다. 흔히,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는 쉽게 간과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필만을 통해 우리는 죽은 자보다 살아남은 자들의 현실이 더 끔찍한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후에 스필만은 독일 육군 장교인 호젠펠트와 맞닥뜨린다. 그런데 장교는 그에게 권총을 들이미는 대신‘ 직업이 뭐냐’는 물음을 던진다. 피아니스트라는 스필만의 대답에 장교는 피아노를 쳐보라고 한다.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스필만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유대인 스필만과 독일인 호젠펠트 사이에서‘ 쇼팽의 야상곡 C# 단조’가 묵묵히 울려 퍼진다. 그렇게 그는 호젠펠트를 만나, 지옥의 낭떠러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다뤘던 다른 수기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아우슈비츠나 가스실 등의 참혹했던 유대인 학살 현장 자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바르샤바라는 폴란드 한 도시의 몰락과 그 폐허 속에서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한 남자가 나올 뿐이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정직하게 늘어놓는다. 그래서일까, 그가 들려주는 비극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셔츠
<베아트리스와 버질>/얀 마텔 저/2011/작가정신

소설의 화자는 헨리이다. 그는 동물이 나오는 소설을 써서 명성을 얻은 작가다. 어느 날 그는‘ 왜 홀로코스트에는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고, 창조적인 비유가 억눌리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소설을 완성하지만, 소설은 결국 출판되지 못한다. 이후, 글쓰기를 중단한 채 살아가는 그에게 의문의 독자가 미완성된 희곡을 보낸다. 헨리는 희곡을 보낸 사람을 찾아간다. 그의 정체는 늙은 박제사였다. 이후 박제사의 희곡은 완성되지 못한 채 박제사와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 이에 헨리는 정성을 다해 조금씩 희곡을 복원해 나간다.

희곡의 주인공은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다. 그들은 몹시 배가 고프고 지친 상태다. 그런 그들은 셔츠의 뒤쪽을 걷고 있다. 셔츠는 모자와 구두처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홀로코스트 역시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유대인 대학살에만 국한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곳곳에 홀로코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배’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은 배에 대해 알려주며 베아트리스에게 배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베아트리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그들의 대화에서 흔한 과일인 배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홀로코스트와 인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저자의 의도가 나타난다.

소설에는 온갖 상징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저자는 소설의 끝에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을 제시한다. 구스타프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나무 근처에서 발견한 시체다. 버질은 그 시체에게 ‘구스타프’란 이름을 붙이며, 시체를 위한 게임을 제안한다. 1부터 13까지 존재하는 게임은 우리가 살면서 직면할 수 있지만, 선과 악의 경계선이 모호한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책의 끝에서 구스타프를 위한 마지막 열세 번째 게임의 칸은 빈칸이다. 결국 홀로코스트,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진실을, 작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홀로코스트와 인간성에 대한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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