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번역, 출판 새물결, 2013
2013년 한국 출판계, 그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올해 한국시장에 책 5권을 출간했다. 그를 세계적인 사회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도 지난 7월, 출간 24년 만에 한국 독자들 앞에 나타났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하지만 그는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만의 비극’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태동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와 현대문명, 문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깔끔한 액자에 담긴’ 또는‘ 벽에 걸린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자신도 그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광기에 찬 살인자들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겼던 사건이고, 그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살인자들이 사악하고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홀로코스트는‘ 일시적으로 일어난 광기’가 아니라 지금도 ‘현대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는 단순히 인종주의나 반유대주의라는 관점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합리성’으로‘ 도덕성’을 손쉽게 부정하는 문명화 과정의 경향을 지적한다. 홀로코스트 당시, 대부분의 나치관료들은 단지 책상에 앉아서 유대인 전체를 파괴했다. 그들의 행동은 대량학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직접 총구를 들이밀지는 않았다는 위안이 있었기때문이다. 어려운 도덕적 선택이나 양심의 저항과 싸울 필요성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도덕적 맹목성의 예를 홀로코스트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기 공장의 노동자들은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공장이 문을 닫지 않게 됐다고 기뻐한다. 그리고 동시에 에티오피아인과 에리트레아인이 ‘무기’를 이용해 서로에게 행한 학살을 안타까워한다.‘ 도덕적 금기’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합리성’이라는 근거를 들이미는 것, 사회적 행위의 윤리적 동기를 부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도덕적 맹목성’이다.
이 책은 1989년 출간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도덕적 맹목성과 현대성은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현대성은‘ 현대문명의 산물’이므로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홀로코스트에서 있었던, 일부 사람들에게 완전하고 무제한의 권력을 주고‘ 자발적’으로 그것에 복종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이곳에 있다.
저자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1941년에는 홀로코스트를 예상할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불안한 이유이다. 이제 더이상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감히 배제하지 못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떤 누구도 홀로코스트를 예측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 홀로코스트가 재현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합리성과 윤리가 서로 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체제에서는 인간이 패배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벽에 걸린 그림으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배워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이 패배자가 되지 않기를, 홀로코스트가 재연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