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주완 편집국장

‘1면에 편집국장의 반성문을 실은 신문’을 본 적이 있는가.‘ 옆집 아주머니의 생일 소식이 실리는 신문’은 어떤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분명 실제로 발행되는 신문이다. 바로 경남도민일보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1999년 창간된 경남을 권역으로 하는 지역신문이다. 창간 과정에서 6,000여 명의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경남도민일보의 행보는‘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끌고 다닌다. 파격의 중심에는 지역밀착보도와 SNS가 있다. 1면에는 독자의 소소한 사연을 실은 고정란‘ 함께 축하해주세요’가 연재되고 있다. 매호마다 지역 독자들의 생일 축하 사연 등이 실린다. 지난 2010년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도지사 시절 권력 남용 의혹으로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했을 때는‘ 권력감시역할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라는 반성문을 1면에 게재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역언론으로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반성한 것이다.

적극적인 SNS 활용은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도록 한다. 지역의 파워블로거 160명과 함께 구축한 블로거 공동체인‘ 갱블’은 경남도민일보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기자를 포함한 전 사원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경남도민일보의 행보를 이끈 사람이 김주완 편집국장이다. 지난 2010년 처음 취임한 이후 지역밀착보도와 공공저널리즘을 지역신문의 활로로 보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1990년부터 지역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지역언론의 바람직한 역할과 발전을 고민해왔다. 지난 26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에서 김주완 편집국장을 만나 지역신문의 가치와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국이나 기자 개인에게 들어오는 선물은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추석에 편집국이나 본인에게 직접 들어온 선물의 수는 어땠나

-별로 안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들어온 선물은 5개 정도인데 모두 돌려보냈다. 양주를 직접 들고 편집국으로 찾아온 분을 정중히 돌려보내기도 했다. 명절 때마다 공지하니까 사람들도 점점 그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지금도 종종 선물이 들어오면 기부단체에 기부한 뒤 발급받은 영수증을 선물을 보낸 사람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다. 매년 그렇게 하니까 선물도 점점 줄어든다.

 

△편집국장 임기가 내년 6월로 끝난다. 연임할 생각은 없나

-누가 만류하더라도 마감할 생각이다. 회사를 위해서도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낫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휴식도 필요하다. 일선 기자로 돌아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토호문제, 민간인 학살과 같은 역사적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

 

△학생 시절 모습을 회상하면 어떤가. 불의에‘ 피 끓는 청춘’이었나

-대학교 1학년까지도 그렇지 않았다. 그냥 소설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군대에서 처음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형성된 것 같다.

일병 때였다. 정훈교육이라고 군인들에 안보관, 대적관 등을 심는 것인데 교육을 담당하는 하사관이 나에게 교안 작성을 명령하더라. 서구와 남미 좌파운동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했다. 모두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상당 부분 우리 사회 모순을 짚어내더라. 그렇게 교안을 만들었는데 정작 부사관이 교육을 못하겠다며 나에게 시키더라. 교안 작성부터 교육까지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모순에 대한 이론적인 학습이 이뤄진 것 같다. 1987년 6월에 제대했다.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그때다. 서울에서, 학교가 있는 진주에서 예비군복을 입고 시위에 참여했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이 높아 보인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신문’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던가

-젊은 시절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신문에서 출발했고, 한국 사회의 서울집중화를 비판해왔던 사람으로서 지역을 지키고 지역신문의 모범적인 모델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인생도 좋겠다는 바람이 더컸다.

사실 중간중간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신문사 말고도 2007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조사팀장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정권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관심이 갔다.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기도 했고 공무원 자리니까. 그런데 이틀을 고민하다가 결국 거절했다. 지금껏 기자로 살아온 사람에겐 일종의 외도라는 생각이 들고 기자로서도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독자들의 소소한 사연으로 채워지는 1면의 고정란 '함께 축하해 주세요'

△지역신문 종사자로서, 부산일보 사태를 바라본 소감이 궁금하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경남 지역의 모 신문사에서 기자들이 파업해서 한 달 동안 신문이 발행되지 않은 적이 있다. 독자들이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이라도 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전혀 없더라. 뒤집어서 생각하면‘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 신문이었다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신문 발행에 문제가 생기면 독자가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신문은 존재 가치가 없는 신문이다.

부산일보는 오랫동안 노동조합이 건강하게 버티고 있었고, 덕분에 정수재단이라는 한계에도 비교적 공정한 논조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고난 뒤 사주가 올바르지 못하면 좋은 신문을 내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신문을 지킨 것은 시민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부산일보가 시민들의 신뢰를 나름 얻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공저널리즘’을 지역신문의 가능성으로 들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지에 공공저널리즘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보도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은 다르다. 지역과 관련된 의제가 있다면 관찰자적 입장에 머무를 게 아니라 개입해서 관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지역신문이 시민운동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지역의 의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지역민과 친밀해지면 지역민들의 인식 속에‘ 지역신문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매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것이다.

 

△지역신문이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보도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것은 공공저널리즘에 반하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 사안을 보자. 부산의 지역매체라고 해서 가덕도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공저널리즘이 아니다. 과거 경남도민일보에서도 지적한 부산 신항 명칭 문제도 그렇다. 당시 진해시에서 시민을 동원해‘ 부산 신항’이 아니라‘ 부산 진해신항’으로 이름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에겐 취득세와 등록세등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신항 건설에 따른 이득과 관련된 것은 명칭이 아니라 입지다. 그런데 마치 이름이 다르면 손해가 있는 것처럼 관에서 시민들을 호도했다. 이러한 점들은 지역신문에서 분명히 비판해야 하고 실제로 비판했다.

 

△오랫동안 지역신문의 발전과 올바른 역할 수행을 위해 투신해왔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지금은 편집국장이라 들을 일이 없는데, 30대 때만 해도 취재원들이‘ 지방신문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서울로 가라’는 말을 종종 했다. 아마 호의를 표한다고 했던 말 같은데 기분이 묘하더라. 덕담처럼 하는 말이었겠지만 그 사람의 기저에는 지역신문을 낮게 보는 인식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지역신문만의 역할이 있다는 소신을 갖고 살아왔다.

▲ <경남도민일보>에서 발행하는 사람 중심 월간지 <피플파워>

 

△지역신문 편집국장으로서, 지역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기자로서 체감하는 지역신문의 한계도 있을 것 같다

-지역신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지역민이 지역신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신문은 역사적으로 정권에 대한 비판에 인색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대구매일신문의 최석채 논설위원이 비판적인 논설을 자주 내다가 폐간됐다. 그런데 그 외에는 한국의 지역 언론이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사실 정권은커녕 지역의 권력에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역사가 별로 없다. 지역의 정치·행정·경제 권력과 결탁해온 역사뿐이다. 자연스럽게 지역민들이 지역언론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언론과 지역의 유지들이 결탁해 자기들끼리 통하는구나’‘ 지역과 서민을 대변하지 않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지역민들의 오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창간된 것이 경남도민일보다. 그러나 여전히 깨지지 않는 벽이 있다.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지역신문이 지역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인데,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안타깝다.

 

△지역언론만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역사회가 나아가려면 지역의 민주적인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 민주적으로 형성된 여론 지역의행정가와 정치인들이 부응하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신문은 바로 지역의 건전한 여론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지역신문이 제 역할을 다하면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민의 삶도 나아진다.

그러나 많은 지역민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의 역사가 짧고 도시 공동체의 형성도 부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신문이 지역의 여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지역민이 지역의 매체 중 가장 건강한 것을 골라서 지역의 여론 공동체로 세울 때, 지역이 더 나아질 수 있다.

 

<약력>

1990년 <남강신문(현 진주신문)> 입사로 언론계 입문
1997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수상
1998년 <경남도민일보> 창간 작업에 참여했고, 2010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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