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편집권 독립’은 언론자유 수호의 핵심적 요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론의 경영권과 편집권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경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언론사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또 반대로 경영을 구실삼아 편집권을 제약하려 한다면 언론은 ‘제대로’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우리의 언론은 여태껏 이 딜레마 속에 자리해왔다. 대학 자치언론의 간행물은 학생들에게 틀에 갇히지 않은 보도를 들려주기 위한 기자들의 땀방울이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굴복하지 않으며, 학내 구성원들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율적인 힘을 발휘한다. 언론이 가진 참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동력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필자는‘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열망이 그 동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동기가 선(善)하다 하여 결과마저 모두에게 참선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모든 사물은 이해관계에 얽혀있고, 그 동기는 진실추구의 행위지만 결국 이마저도 맹인모상(盲人摸象)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대학 자치언론들은 가끔 독자로부터 자신들의 논조에 대한 의심을 받는다. 기존 언론에 비해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자칫 자치언론의 보도가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게 한다. 이는 재정적 어려움과 동시에 그들이 가지는 고민일 것이다. 때때로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그 과정에서 진실을 탐구하려다 보면 그들의 가치판단이 기사에 녹아나기 마련이다. 그들은 편집권에 가해지는 압력 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기존 억압으로 분출하지 못했던 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이것이 꼭 모든 독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치지만은 않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사실을 넘어 ‘진실’을 보도하고자 노력하며 모든 사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려 함은 명백하다. 하지만 독자 대부분이 언론에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수많은 기성언론뿐 아니라 이해 당사자의 재정적 예속에서 벗어난 대학 자치언론까지도 말이다. 어쩌면 이는 ‘언론’이 피하기 어려운, 아니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찬사’와 ‘비난’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아닐까.

이러한 숙명을 떠안고 오늘도 수많은 언론은 독자를 위해 펜을 든다. 가장 올바른 언론보도란 무엇인가.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아닐 것이다. 결과물을 잔뜩 나열해놓고 경쟁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결과로 말하지 않고,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언론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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