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입에 붙은 말이다. 우리는 앵무새처럼 저렇게 말하고 누군가 의견을 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조언을 구한다면 더 넓은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고 다채로운 의견들이 모이게 되므로 결국 혼자서 생각할 때보다 더 좋은 결론을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남들의 ‘의견을 묻는 것’과 남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건 어떻게 할까? 저건 어떻게 하지?” 에서 그치지 않고 “뭘 할지 네가 좀 결정해 줘” 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내 일이니까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결정권’을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오늘 뭘 먹고, 어떤 옷을 사고, 공강시간에 어딜 가서 뭘 할지 하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뭐 그리 소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다 큰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는 있을까? 선택의 규모가 커질수록 책임감도 커지고, 그 책임감은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작은 선택에서의 작은 부담감조차 떨쳐낼 수 없다면 큰 선택에서 마주하게 되는 부담감도 이겨낼 수 없을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우리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자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가 해야 할 결정을 대신 해 주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이 돼 버린다. 주연 자리를 버리고 조연으로 물러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살면서 종종 만나는 선택의 기로에서의 선택은 나 스스로가 해야 한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나와 수많은 남이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삶도 소중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남들의 의견을 신경 쓰기에 급급해 정작 하나뿐인 소중한‘ 나’의 의견에 소홀해진다면 그거야말로 우리의 인생에서 스스로 주도권을 놔버리는 일일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자신의 결정권을 놓고 있었다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스스로 결정해보자. 습관처럼 묵어진“ 뭐 사지? 뭐 먹지? 어디 가지? 뭘 하지?”를 단숨에 떨쳐내기는 어렵겠지만 작은 선택부터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나중에는 앞으로의 내 미래를 바꿀 결정도 혼자 힘으로 척척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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