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의 한 제방에 얼굴과 지문이 문드러진 시체가 발견됐다. 참혹할 정도로 훼손이 된 그 시신을 수사하던 경시청의 형사들은 곧 용의자로 피해자의 전 아내였던 ‘하나오카 야스코’를 지목한다. 하지만 야스코에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용의자X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시가미 테츠야’. 그는 그녀를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내였다.
 
  하루의 시각을 분침과 시침으로 나타내는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시계는 그날의 시각을 항상 정확하게 말해준다. 이것은 시계를 이루고 있는 톱니바퀴들이 일정한 체계 속에서 늘 그렇듯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자유를 갈구한 나머지 이 체계를 깨고 싶어하는 톱니바퀴가 있다면 안정은 깨져버리고 만다.
 
  수학자 ‘이시가미 테츠야’는 안정과 자유의 추구라는 상충되는 가치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수학은 이시가미에게 살아갈 이유를 부여했고 그는 수학에 모든 인생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을 계속 가지 않았을 때 무의미해져버리는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고뇌하고 있었다. 결국 이시가미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천사를 만나게 된다.
 
  그 천사는 이시가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와 욕망을 부여했다. 어둡고 칙칙했던 세상이,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일정한 체계를 이루고 있던 톱니바퀴가 안정을 깨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러나 수학을 제외한 모든 대상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적어도 그에게는 성립되지 않는 논리였고 자유를 향한 그의 몸부림은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다 줬다.
 
  ‘하나오카 야스코’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이시가미와 다르지 않은 비극적 운명을 타고 난 여인이다. 그녀는 새로운 삶, 즉 자유를 갈망해 왔다. 전 남편이자 비극적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도미가시 신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야스코와 그녀의 딸인 ‘미사토’는 고도구 모리시의 한 연립주택을 얻었을 때 새로운 삶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야스코의 숙명(宿命)이었을까. 도미가시의 집착은 이내 이시가미의 집착으로 전이(轉移)된다. 야스코를 위해 보여줬던 이시가미의 초현실적 희생정신 속에는 분명 집착이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스티스 시절부터 야스코의 고충을 들어왔던 ‘쿠도’의 등장은 그녀의 생활에 탈출구를 만들어 줬지만 이것은 그녀의 삶이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삶도, 이시가미의 삶도 일탈의 자유와는 관계가 이어지지 못했다.
 
  유가와를 필두로 경시청의 수사망이 이시가미와 야스코의 목을 조여오는 긴장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도를 고조시켰다. 또한 나를 포함해 ‘용의자X의 헌신’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맹목적 사랑에 눈시울을 적셨을 것이다. 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단상들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해줬던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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