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재륜(학생과)

 

30여 년간 우리학교의 역사와 함께한 사람이 있다. 학교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애교심이 깊은 학생과 박재륜 씨. 그를 만나 우리학교에 깃든 지난 30여 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학교의 순환 근무 체계에 따라 그동안 3개의 단과대학과 3개의 본부부서에 몸을 담았다. 그만큼 그는 우리 학교의 역사의 산증인이고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베테랑이다. 기자가 학생처에 찾아갔을 무렵에도 박재륜 씨는 바쁜 업무에 스크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박재륜 씨는 학교 근무 초기인 1980년 대에 학생운동과 관련해 다양한 일을 겪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불안했던 1980년 대 중반은 학생운동이 많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던 중, 우연히 본부 밖에 있던 최루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당시 부서 직원들 모두가 연기와 최루탄 가루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학생들이 뭉쳐 위기를 잘 이겨낸 것 같아 고맙다”며 “자신이 무탈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고 겸손을 표했다.

또한 박재륜 씨는 학생운동과 관련된 일들을 많이 기억했다. 그는 “과거에는 등록금이 비싸다고 시위하거나 건의하는 학생들은 없었다”며 “오히려 정치적 이슈에 대해 데모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분신자살과 같이 비극적인 일들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이에 대해선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 때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하여 박재륜 씨는 학교 자체적으로 동료들과 함께 자체 순찰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학생들이 인문대를 점거한다고 해서 순찰을 나간 적이 있다. 그는 “순찰을 돌 때마다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과거와 현재 학생들의 관심분야는 많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요즘 학생들이 사회 참여보다는 자기계발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은 정치적으로 동요되는 시기가 아니라 그런지 학생들이 자치활동에 더 비중을 두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도 많이 발전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본부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자신들의 이야기를 농성으로 많이 표현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있었던 학적과는 고요했다. 아무리 성적에 무심했던 운동권 학생이더라도 다른 학생들의 성적관리에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는 “선배, 후배, 학부모들이 성적증명서를 발급받는 곳이라 그런지 학적과만은 조용했다”며 “그에 비해 경리과와 총무과는 학생들의 점거로 인해 북적거릴 때가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현재 학생 복지를 담당하는 박재륜씨는 학생의료와 학생증 제작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학교 학생들의 의료공제비 납부 비율은 60% 안팎에 불과하다. 그는 “의료공제비 납부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이의료혜택을 받길 바란다”며 적은 의료공제 납부 비율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과거에 학생들이 겪었던 아픔을 현재의 학생들이 포용하길 바라며, 오늘도 박재륜 씨는 학생과에서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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