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영화 올드보이. 1988년. 오대수(최민식)는 집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납치된다. 3류 호텔처럼 꾸며진 8평 정도의 공간에 감금된 채 15년간을 사육된 후 2003년에서야 비로소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는 갇혀 있으면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복수의 칼을 갈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유도 없이 자신의 자유를 송두리째 수탈을 당했을 때, 그 심정을 어떠할까? 오대수나, 몽테크리스토는 상대가 있어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시간을 소모하면서 자신을 지탱할 수 있지만, 그 대상마저 없다면 무엇으로 지탱을 할 수 있을는지.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제목의 이 책은 오래 전 지하철 문고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고 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대출받아 읽기를 마쳤다. 저자 신영복은 1968년 7월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무기형을 선고 받아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다 1988년 8월 15일 가석방되었었다. 감옥에 있었던 20년 동안 하루에 2장씩 주어지는 휴지에 써서 남긴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스무 번째 옥중 세모를 맞으며”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87년이 저물면   88년이 밝아오고
  88년이 저물면   89년이 밝아오고
   중략
  98, 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암담함이 뼈 속으로 저며 든다. 책의 내용은 차지하고 이 책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시간을 영위할 수 있을는지’하는 의문 부호가 주어진다. 가끔은 살아가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좌절도 하고 남을 탓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고 그 중에 나도 포함된다. 그리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생의 끝을 앞당기는 사람도 흔히 있다. 그 중에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는 사회 지도층의 사람도 있으다. 우리 서민이야 ‘그러려니’ 하고 살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그 무게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고, 헬렌 켈러의 <3일만 볼 수 있다면>의 글이 떠오른다.
 
  나 자신의 나태한 생활 태도와 허망한 욕심으로 이룰 수없는 일로 남을 원망하며 세상을 미워하면서 살았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자유롭게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될 것이라는 작심을 하면서 지금에 만족을 하는 삶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해 보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미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국가권력을 이용해 남의 인생을 그토록 망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형의 결정에 가담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고 일상생활을 아무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을까’하는 원망도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상으로 나 자신이 그 역할을 한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었을 것이고, 그 분들도 피해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이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 사회는 서로를 믿고 국가 권력이 존중받는 시대가 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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