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 장르다. 유저들은 레벨업을 하고, 더 좋은 장비와 보조도구를 갖추며, 필드와 던전에서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게임에 따라, 다른 종족 유저들의 습격에도 대비해야 하며, 마음 맞는 이들과 파티를 맺어 힘을 모을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세계에 대한 ‘자아의 성장’에 초점을 둔다. 그 과정이 매력적일수록 유저들의 몰입도는 더 커진다. 자아의 성장과 확대를 통해 유저들을 영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상상적으로나마 신분 상승에 대한 성취감도 갖게 한다. 많은 유저들이 이와 같은 매력을 버릴 수 없어 오늘도 밤을 샌다.

 
몇 해 전, ‘로비오’라는 핀란드의 작은 게임회사가 내놓은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는 전 세계적으로 억 단위가 넘는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PC에서 모바일로 게임 환경이 이동함에 따라 규칙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해야 하는 MMORPG보다는 지하철 두세 정거장 정도의 이동시간에 한 스테이지를 끝낼 수 있는 캐주얼 게임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앵그리버드>는 게임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것만으로 그 성공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 게임은 MMORPG와는 달리, 자아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으며 영웅의 일대기를 형상화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상상적인 신분 상승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각종 특기를 가진 새들은 자신의 온몸을 던져 단단한 성벽에 둘러싸인 탐욕스런 돼지떼를 향해 돌격한다. 세계의 폭압적인 현실을 자아의 성장으로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아의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투쟁을 실현하려고 한다. 소중한알을 훔쳐 간 돼지떼에 대한 증오를, ‘화난새’들은 극단적인 죽음충동으로 대신했고, 유저들은 호응했다.
 
물론 자아와 세계의 투쟁을 형상화하는 게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최초의 상업용 전자게임 ‘퐁(Pong)’에서부터 투쟁(agon)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앵그리버드>는 자아의 세계에 대한 투쟁 방식을, 세계에 대한 자아의 가능성이 완전히 부정당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써 나타나게 했다.
 
최근에는 AOS 게임과 SNS에 기반을 둔 게임, 그리고 '디펜스 게임'이 많은 유저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게임들은 공격하여 정복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가꾸는 데 더 초점을 둔다. 상대방을 공격한다 해도, 공격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방어를 전제로 공격하는 것이 목적이다. 마냥 제 몸을 내던지기보다, 지킬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유저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
 
게임은 세계에 대해 우리가 취하는 태도를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준다. MMORPG처럼 세상이 원하는 규준에 맞추어 이력서의 한 줄이라도 더 채워 ‘자아의 성장’을 도모할 것인가, <앵그리버드>처럼 자신을 내던져서라도 세계에 맞설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디펜스게임’처럼, 자아를 압박하는 세상에 대해 적당히 지키며 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한다해도 자아와 세계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게임은 환상이지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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