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를 청하려 오른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자연스레 오른손을 내민다. 왼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악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오른손과 왼손은 맹목적으로 싸우기만 한다. 사람들은 사건의 핵심과는 관계없이 모든 것을 오른손과 왼손의 싸움으로 몰고 간다.

시선을 조금 좁혀보자.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은 우리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이하 총학)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고, 총학은 눈과 귀를 막은 채 입만 움직이고 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실제 캠퍼스 내에서도 이런 장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총학이 게시한 현수막을 보고 총학을 비난하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고, 듣지도 않는 학생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소리 지르는 총학의 모습은 일상과 같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총학의 정치색을 비난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정치적 중도’를 외치는 부산지역총학생회모임(이하 부총모)과 흡사하다. 부총모 또한 우리학교 총학생회의 편향적인 정치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부총모나 학생들도 ‘중도’를 걷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의 정치색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치적 중도’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우리학교 총학이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학생들의 목소리에귀 기울이는 부경대 총학의 모습은 참고할만하다. 부경대 총학은 그들이 속한 부총모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직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학교 총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리학교 중앙운영위원회의 낮은 참석률은, 가뜩이나 없는 총학과 학생들 간의 소통 수단을 더욱 축소한다. 총학은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유인물을 배부했다가 반발을 겪고 나서야 문구를 고치기 시작했다.

총학이나 학생들이나 대화하고 설득하면 충분히 서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버릇처럼 ‘나라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학교 하나 바꾸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좁고, 대화할 시간은 충분하다. 총학의 ‘대답 없는 메아리’가 싫다면, 학생들은 문창회관 3층 총학생회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 될 일이다. 학생들의 손가락질을 받기 싫다면, 총학은 스스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비록 댓글이지만 커뮤니티에는 ‘생각 있는’ 학생들의 의견도 많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감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총학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기자활동을 하며 총학을 상대로 여러번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총학집행부들이 자신의 역할에 힘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더있다. 오른손과 왼손은 악수는 할 수 없어도 서로 맞잡을 수는 있다. 총학과 학생들은 마주 봐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란히 서야 하는 관계다. 나란히 서서 옆 사람의 손을 잡으려면 반대쪽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 양손을 쓸 수 있으면 오른쪽에 서든 왼쪽에 서든 관계없이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