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이 새겨진 천원권과 김활란의 초상이 박힌 오만원권을 상상하는 일은 끔찍하다. 화폐의 도안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그 사회가 용인했을 ‘지배적 가치’와 ‘집단적 망각’을 떠올리자면 그 어떤 디스토피아 못지않게 암울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그를 기리어 기억할 만한 지위에 올려두는 일이고, 아울러 해당 사회의 표상 내지 하나의 지향으로 삼는 행위이다. 한 사람에 대한 호오와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이라지만, 우리 사회가 추어올리고 있는 일부 인물군은 결격 사유가 뚜렷하다. 단지 화폐에 등장하지 않았을 뿐 우리 사회는 친일부역자를‘ 가치화’하고 있다. 그도 허다하게, 오랫동안.
 

작곡가 류재준씨가 ‘난파음악상’을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상이 제정된 이래 수상 거부자는 류씨가 최초였고, 이튿날 변경되어 발표된 수상자 또한 고사함으로써 46년 만에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한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연유를 밝혔다.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받기도 싫을 뿐더러 이제껏 수상했던 분 중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상의 공정성과 도덕성에 회의를 느껴 거부한 것입니다.” ‘친일파 음악인 이름’과 ‘상의 공정성’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뒀는지 알 수 없으나, 곧이어 그가 ‘홍난파의 친일행적을 잘 정리한 글’을 게시하였다는 사실은 전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얼마 전 바로 이 지면에 썼다. “친일 전력자를 기념한 상(賞)과 상(象)의 개수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얼마간 거친 언설일 수는 있겠으나, 물러서기 어렵다. 직능이나 사회 활동을 범주화할 수 있는 단어의 숫자만큼 친일파 기념상은 각계에 빠짐이 없고 특히 학술, 언론, 문학, 예술 쪽에 상당하다. 친일부역 행위로 마련했거나 친일부역 행위가 있었기에 계속될 수 있었던 권력과 금력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후대와 인척들이 이제 그를 추앙하기 위해 그 권력과 금력을 다시 이용하는 광경은 슬프게도, 낯설지가 않다.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사랑하고 존경을 바칠 수 있는 우리 세대의 인사들이 별다른 주저 없이 그 상에 공손히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러므로 친일파의 이름으로 상을 주고 받는 행위에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지금도 적지 않은 이러한 상이, 심지어 관의 주도하에 자꾸만 생겨나려 한다는 점이다. ‘백선엽 한미동맹상’은 이 기형적 작태의 절정이었다. 항일무장세력에 총질해 댄 이의 이름을 건 상을 후대의 용맹한 군인에게 주겠다는 발상은 도대체가 해괴할 뿐이다. 여기에 무슨 좌우의 문제를 대입하는가. 몰 역사와 비상식과 집단화된 기득권층의 이기심이 있을 따름이다. 살아서 영화를 누리고, 죽어서는 ‘상징 권력’마저 장악한 저들의 월계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공이 크니 과는 사하자는 음험한 논리와 더욱더 견고해진 헤게모니가 여기에 똬리를 튼다. ‘힘든 결정’으로 이를 물리친 젊은 작곡가는 썼다. “과가 너무나도 거대합니다.” 이 말을 잊는 한, 우리는 60여 년 저편에서 그다지 멀리 왔다고 자부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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