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기획을 낸 것은 필자였다. 버스킹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고‘, 대체 거리에서 공연하는 저 사람들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문으로 시작한 버스킹 취재였다. 하지만 필자가 마주한 것은 문화를 상실한 대학로였다.

취재를 시작했지만 버스커를 만나기란쉽지 않았다. 우리학교 앞이 버스킹 장소로 선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하며 만났던 버스커들이나 여러 문화단체들은 우리학교 앞이 버스킹 장소로 좋은 것 같지않다는 말을 했다.

부산대에서 버스킹을 볼 수 있는 기간과 장소는 한정돼있다. 대동제, 시월제, 동아리 모집기간 등 축제나 동아리가 활성화되는 기간의 정문과 온천천밖에 없다. 아무일도 없는 평범한 때에 학교 근처에서 버스커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학교 근처에서 두세 번 버스킹을 본 적이 있다. 한번은 정문 블루베리 안경점 앞에서 누군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했다.차가 지나다니고, 사람에 치이는 그곳에서여유롭게 공연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이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차가 없는 거리에서 공연하자니 주변 상인들의 민원이 걱정이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곳은 온천천이다.

하지만 온천천이‘ 스마트 거리 조성사업’으로 공사에 돌입하면서 우리학교 앞에서버스킹을 볼 길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한 취재원은 버스킹이 부산에서는 우리학교 앞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는데 다들 버스킹을 하러, 보러 해운대나 광안리로 떠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부산의 버스킹을 쓰려면 해운대에도 가봐야겠다는 마음에 해운대를 찾았다. 그리고 무작정 찾아간 해운대에서 놀랐다. 8시가되자 하나 둘씩 기타와 앰프를 늘어놓고 버스킹을 시작했다. 사람이 많을 때는 20m간격으로 버스킹이 줄지어 서 있는 장관도 볼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버스킹을 시작하니 하나 둘씩 그 앞에 앉아 버스킹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로웠다. 부산대 앞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때문에 필자는 학교 앞에‘ 공연할 곳이 없다’는 말에 크게 동감한다. 우리학교 앞이 부산대학路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악사들에게 주어진 ‘길’이 없다는 사실에 동감한다. 공연할 공간도, 길거리의 행인에게도‘ 여유’가 없는 학교 앞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백사장을 등지고 하는 공연이 훨씬 더 그들에게 편할 것이다‘. 쪽팔림’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선 악사들의 공연을 기꺼이 들어주는 이들은 우리학교 앞 같은 번화가보다 관광지에 더 많다.

결국,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거리로 나오는 이들과 관객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10cm도, 버스커버스커도 거리의 악사들이었다. 우리학교 앞에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없다. 관객 역시 없다. 어쩌다가 용기를 내 나온 악사들을 보면 흘끗 쳐다보고 내 갈 길을 가는 나에게 과연 ‘문화’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반성해본다. 또한, 일상에 파뭍혀 음악을 감상할 일말의 여유조차 갖지 못한‘ 대학생’의 모습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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