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를 달리하면서 논객들 간에 오가는 담론의 주제도 다양하다. 1990년대에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거기에 있었고, 최근에는 ‘다문화’가 가히 그 중심을 차지한다고 할 만큼 화두가 되고 있다. 시차를 두고 등장하긴 하였으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요 발전지표로 제시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경험하였으나 우리로서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다문화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매우 유연하고(flexible), 관대하고(tolerant), 열려(open)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 역사적, 문화적 전통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유연성과 관대함과 개방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야말로 다문화의 논의를 진전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존재하게 된다. 다문화사회가 진행되면서 정책적 지향성으로 대두되는 다문화주의는 바로 이러한 사회내 경직성과 폐쇄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건전한 다문화사회로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 대학도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국가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는 그 하나의 방안으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대학에서 채용한 외국인 교수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이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 그 정확한 이유야 당사자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의 논조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외국인 교수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섣불리 경쟁적으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으로 보도되고 있다.
 

  부산대학교도 2009년 9월 현재 61명의 외국인 교수가 재직 중에 있고 이 중 정식 직원으로서의 외국인 교수는(조교수 이상급) 1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대외교류본부라는 조직을 신설함으로써 교수, 학생을 막론하고 대외교류의 범위를 확대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실로 대내외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앞서 언급한 다른 대학들과 같이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추진한 정책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허례와 허식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세심한 정책적 배려와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료 교수들과 복덕방을 돌아다니며 집을 구하고, 조교한테 부탁하여 은행계좌를 트고,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친구를 통해 운전면허증을 받으러 가고, 한글로 된 공문을 옆 방 다른 학과 교수에게 눈치 보면서 물어봐야 하는 현실에 처하게 될 때, 과연 그 외국인 교수 입장에서 우리가 제공하는 혜택이, 이 사회에 계속 머물게 하는 요인으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채용하고자 하는 외국인 교수의 자질과 성품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과정을 통해 채용된 외국인 교수가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원래를 취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혹은 대학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다문화사회에 즈음한 관용을 동시에 갖출 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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