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아름다운 가능성이다. 상상을 통해 창의적인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또 상상은 자신이 처한 고난과 어려움을 뛰어넘는 변화의 밑그림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상상은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원동력이다. 상상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으며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희망이 상실되어가는 시대에서 상상이 더욱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인간은 상상을 통해 수많은 제도와 권력관계가 변화시켜왔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법과 제도도 주어진 권리를 바꾸고 싶어 하던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상상의 힘으로 사회 질서와 권력관계를 무수히 바꿔 왔고, 새로운 변화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한정된 영역에서 좁게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대학, 국가, 그리고 그곳에서 통용되는 법, 제도, 그리고 관습 속에서 순응하며, 스스로 상상의 영역을 제한하고 있다. 사회의 규칙과 틀을 언제든지 바꾸거나 깰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상상 공간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는 그 순간 자신의 활동기반마저 파괴될 수 있다고 두려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현존하는 제도와 권력 속에 중독된 채, 그 속에서만 희망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수단에 불과하던 제도와 규칙들에 의해 거꾸로 통제받고 끌려가는 권력의 전화 상태도 문제이다. 자신들이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 온 희망의 산물들에 도리어 통제당하고, 권력화 된 법과 제도와 그것들이 분출하고 있는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울타리에 갇혀 불안해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실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한계를 체감하며 적당히(?) 상상하거나 몽상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현실을 마음껏 재구성하려 하지 않고, 점점 더 희망에 대한 불신, 희망이 상실되는 심리적 박탈감만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더 넓고 크게 상상하는 ‘상상혁명’이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기억하며,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해왔던 제도와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또 그것들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상상하며, 상상의 무한한 창조의 힘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많은 이들이 생활 세계 속에서 행복을 기대하며, 현실의 조건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자신이 기대하는 사회의 모습과 변화된 권력관계를 재구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사회 모순에 대한 저항,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임, 학교 내 권력관계 변화에 대한 요구 등, 우리 안에 꿈틀대는 변화의 욕망에 충실하며 상상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안적 모색들이 한갓 몽상으로 그치기보다, 기억과 반성 속에 발현된 구체적인 힘과 가능성을 가진 상상이길 기대해 본다. 또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상상이길 기대해 본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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