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없이 살기로 한 이유

기자는 밀을 먹을 수 없게 된 첫날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일어나자마자 밀려오는 배고픔에 초코케이크를 나도 모르게 퍼먹고 있었던 것. 책상 옆에 놓아두었던 <밀가루 똥배> 책을 보고서야 아차 싶어서 먹던 케이크를 뱉어냈다.

그렇다면 왜 밀 없이 살기로 했는가? 책 <밀가루 똥배>의 저자에 의하면 현대의 잡종교배 밀은 인류 조상들이 사용한 밀과 다르며, 이 밀은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있어 아무런 안전을 점검받지 못한 채 식품으로 공급됐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밀은 수입 밀이다. 이상학(농업경제) 교수는“ 수입 밀은 수송과정에서살충제, 방부제 등의 약품처리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며“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밀가루는 또 식량 주권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국민 1명당 연간 평균밀 소비량은 33.4kg으로 쌀 소비량의절반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밀자급률은 1.9%로(2011년 기준) 쌀 자급률이 8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때문에 밀 자급률이 1% 미만에 달하던 20년 전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 등을 통해 밀 자급률을 높이는 운동을 해왔지만, 자급률 16%에 달하는 일본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개인적인 건강을 위해서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나 (수입) 밀 없이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 기자는 밀을 피하기 위해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택했다

한식이라면 밀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기자는 분명 과자를 많이 먹는 편도아니고, 한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밀없이’ 살아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못한 불편은 첫날 점심부터 찾아왔다. 항상 가는 북문 밥집에 비빔밥을주문했는데, 어묵 조림과 분홍 소시지구이, 부추전 등에도 밀이 포함돼있어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식사후에도 불편은 계속됐다. 식사 후에는 주로 카페에 가는데, 와플 등의 밀디저트를 먹고 싶어하는 지인들에게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다. 이 밖에도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밀 지뢰에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 이었다.

음식계의 복병 밀, 간장·고추장·쌈장에도 있었다

셋째 날에는 밀이 포함된 음식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간장, 고추장, 쌈장에도 밀이 들어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전통 재래식 고추장이아닌 공장에서 만드는 개량식 고추장은 주로 밀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한다. 성종환(식품공) 교수는“ 양념류의주원료인 콩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이적기 때문에 구수한 맛, 단맛을 좋게하려고 밀이나 보리, 쌀 등을 첨가한다”며“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양념에는 거의 밀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날 깨달은 것은 세상의맛있는 음식에는 모두 밀가루가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밀 없이 살기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하게 1kg가 줄다

마지막 날 아침, 별생각 없이 몸무게를 쟀는데, 거짓말처럼 5일 만에 1kg이 빠져있었다. 왜 살이 빠졌느냐고?밀을 못 먹으니 군것질이 원천 봉쇄됐기 때문이다. 나를 주로 유혹하는길거리·편의점 음식들은 거의 밀로만들어져있어서 엄마가 삶아 주신 호박이나 신선한 과일로 밀가루의 빈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또 밀을 끊는 동안 먹기 전에 성분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이 들어서, 밀 뿐만 아니라몸에 좋지 않은 가공식품, 과자류에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내일 아침에는 가까운 동래생협에 가서 우리 통밀로 만든 빵을 사 먹어 볼 계획이다. 맛이 좋고 부드러운가공식품도 좋지만, 거칠고 맛은 덜해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 습관이 몸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몸소 깨우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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