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기관사들은 어둡고 좁은 기관실에서 외로움과 홀로 싸운다

지난달 3일 오후 2시, 1호선 노포동역을 출발하는 부산 지하철의 좁은 기관사실. 1호선 소속 김모 기관사는 노포동-신평 간 1시간 2분 동안의 운행을 준비 중이다. 유턴을 할 수 없는 지하철 구조 때문에 서둘러 반대방향 기관실로 이동하는 기관사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지하철에는 기자와 부산지하철노조 최상길 신평승무지회장이 동행했다. 성인 남자 세 명이 들어가자 한 평 남짓한 비좁은 기관사실이 가득 찼다. 커다란 유리로 앞이 탁 트였지만, 기계장치와 각종 안전장치들 때문에 앞.뒤로는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좁았다. 김 기관사는 “어두운 지하를 몇 시간 동안 달리다 보면 가끔 멍한 생각이 든다”며“ 차량 운전과는 다르게 신호 체계 없이 철길만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포동역에서 승객을 태운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열차 시간이 지연되면 승객들에게 많은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맞춰서 빠르게 운행해야 한다. 최근에는 5분 이상 늦으면 경영평가에 불이익을 주는‘ 열차 지연 5분 평가지침’이 도입됐다. 김 기관사는 “조금만 운행이 늦어지면 관제실에서 빨리 가라고 재촉한다”며“ 러시아워 시간에는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고, 사고도 많이 발생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두실역을 지나 지상 구간으로 나오자 환한 부산 시내 모습이 나타났다. 어둠에 꽉 막혀 있던 지하에서 벗어나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최상길 신평승무지회장은 “두실역에서 교대역까지의 지상 구간은 1호선 기관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라며“ 탁 트인 도심 풍경에다 사계절마다 바뀌는 온천천의 모습도 볼 수 있어 근무 중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객들이 많은 부산대역부터는 기관사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승객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정거장마다 설치된 흐릿한 CCTV 모니터는 시야 확보에 한계가 있다. 문을 닫던 중 한 승객이 급하게 탑승하자 깜짝 놀란 김 기관사는“ 저렇게 뛰어들다가 다치는 승객이 아주 많다”며 “서면역처럼 복잡한 정류장에선 몇 번씩 문을 여닫는 것이 다반사”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열차가 고장 나거나 사고가 날 경우에는 기관사의 부담이 더욱 커진다. 1999년 IMF 이후 기관사와 차장 두명이 함께 맡던 지하철 업무를 기관사 홀로 담당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 기관사는“작은 고장이 한번 나기만 해도 안내 방송을 하고, 지하철 끝까지 뛰어가 짧은 시간 내에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대구지하철참사에서 피해가 확대된 원인으로 지적받은 1인 승무원제는 지하철노조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15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담감에 더해 매년 계속되는 투신자살은 많은 기관사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공황장애로 이르게 하기도 한다. 매년 6~8명의 자살사망자가 발생하는 부산지하철에서는 올해 3월 기준으로 벌써 2명이 투신자살했다. 최상길 신평승무지회장은“ 공황 장애를 겪는 기관사들과 이야기해 보면 항상‘ 떠나고 싶다, 차안타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동래역에 도착해 기자와 최상길 신평승무지회장이 내릴 시간이 다가오자 김 기관사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남은 1시간 동안 어두운 철길에서 홀로 운행해야 한다는 걱정때문이다. 김 기관사는“ 기관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높은 임금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이라며 “마음 편하게 지하철을 운전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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