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비행운> 중 ‘물 속 골리앗

 

며칠만 지나면 그칠 거라 여겼던 비는 한 달이 지나도록 지속된다. 천천히, 꾸준히 내리던 비는, 어느 순간 돌풍을 동반한 태풍으로 바뀌었다가, 세찬 비만 쏟아내는 폭우로 바뀐다. 지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순간, 소년은 어머니의 시체를 화장실문을 뜯어내서 만든 간이 배 위로 옮긴다. 빗물에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오래된 아파트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표류하는 뗏목, 떠내려가는 어머니의 시체,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의 별과 그 별 아래의 희미한 실루엣. 소년의 눈에 보인 그것은“ 물에 잠겨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골리앗크레인”이었다.

김애란의 소설 <물속 골리앗>의 내용이다. 지상의 모든 것이 폭우에 잠긴 상황에서도 하늘 모르고 뻗어 있던 크레인은 그 위용을 자랑했다. 생각해 보면 폭우 속 뿐이겠는가. 우리는 지상 곳곳에서 그 크기와 높이를 자랑하는 크레인들을 만난다. 재개발현장에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인원 감축을 주장하는 회사와 노조 간의 대립 현장에서,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서,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작은 마을에서 수많은 크레인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크레인 위에 올라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들은 대부분 한쪽 팔이 길었다. 그래서 마치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보였다.”

절망스러운 것은 소년의 외침을 누구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소년이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음을, 죽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물 위를 표류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소년이 암흑 속에서 크레인 하단을 붙잡고 “제발 멈추시라고” 외치는 그 절규와 비명을, 우리는 듣지 못한다. 아니, 들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린다면, 장마와 태풍, 폭우로 인해 우리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뽑혀버린다면, 우리가 소년의 외침을 외면하면서 지켰던 그‘ 무엇들’ 역시 빗물 속에 모두 잠겨 버리지 않을까? 그때서야 우리는 소년의 외침이 소년만의 외침이 아니라, 나의 외침이며, 우리들의 비명이자 절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성서에서“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 다윗은‘ 돌이 든 무리맷 끈과 막대기’만 가지고 ‘비늘갑옷’을 입은“ 여섯 엠마하고 한 뼘이나 더 되는” 키를 자랑하는 장수 골리앗을 이겼다.

그러나 이 땅의 다윗은 지금도 휘청거리는 크레인 위에서 “누군가 올” 것을 기다리고있다. 소년의 힘만으로는 골리앗크레인을 이길 수 없다. 지상 위의 수많은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서는 골리앗보다 몇 배나 많은 수의 소년들이 필요하다. 그 소년들이 손을 잡고,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을 때, 크레인 위의 소년은 별만 보이는 어둠 속에서, 크레인 실루엣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루엣이야말로 소년에겐 별빛보다 아름다운, 지구 상의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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