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육평론가 이범

     


△지난­ 대선,­안철수 ­후보의 ­출마­ 포기­ 이후 ­근황이 ­궁금하다
 

-교육평론가라는 직업이 사실상 프리랜서지 않나. 사실 요즘엔 봄이라 그런지 밤낮으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강연이 없는 날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라도 하니까 마냥 한가하진 않다.(웃음) 6월부터는 한겨레신문에 고정 필진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대학신문사에서도­ 1년­가까이 ­활동했다. ­대학생 ­시절 ­기억에 ­남는­일이­있나
 
-원래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인 생물학 말고도, 사진이나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89년 봄이었다. 막 학보사를 그만둔 상태였는데, 서당동 철거촌에 용역 깡패들이 들이닥쳤다는 말을 듣고 친구 몇 명과 사진기를 들고 갔다. 그곳에서 식칼을 들고 주민을 위협하는 용역 깡패와 그 깡패가 경찰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모두를 목격했다.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에 한겨레신문에 투고하기도 했다. 그때 꽤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양단에 서야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으로 ­세상의­ ‘속 ­살’을 ­목격한 소감은 ­어땠나
 
-‘이제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던 거 같다. 그래서 그 때부터 거의 2년여 동안 주체사상이나레닌주의 같은 ‘운동권’의 이론적 배경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봤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민주의자로 살아왔다. NL과 PD 모두에 동의할 수 없었으니까. 386세대의 마지막 학번이지만 맑스와 푸코, 그리고 폴라니를 함께 읽을 수 있었던 첫 세대였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이념적 혼란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고, 전형적인 386세대와는 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처음­ 학원계에­ 발을­ 딛는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나
 
-몰랐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학원이 기승을 부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막 학원 금지령이 풀려서 크고 작은 학원들이 중구남방식으로 들어서는 단계였으니까. 처음 일했던 학원도 작았다. 시험삼아 해보는 수준이었는데 그때 나에게 학생을 가르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잘나가는 ‘스타강사’에서 ­사교육계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2002년 연말에 ‘댓글 알바’ 사건이 있었다. 회사의 유명 강사가 자신의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강의에 추천하는 댓글을 단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모든 강사가 댓글 알바를 하고 있었다. 업계자체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에 ‘그만두면 되지 않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지 않나.

△사교육계를 ­떠나­ 무료로­ 강의하겠다는­ 선언에­ 사교육­ 종사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궁금하다

-‘학원가의 서태지’가 은퇴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서태지도 정상에서 돌연 떠나지 않았나.(웃음) 은퇴선언을 워낙 강력하게 했다. 학원계에 은퇴를 알리는 팩스를 쫙 돌렸더니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 정도로 하니까 정작 그만둘 때는 사람들이 크게 만류하지 않더라.(웃음)

△이후­ EBS와­ 강남구청,­ 곰TV­등에서 ­무료로 ­강의했다

-사실 메가스터디에서 활동할 때부터 비밀리에 무료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만두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EBS에서 “자신들도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비밀리’에 무료강의를 준비하고 있다”며 합류를 제안했다.(웃음) 한때 사교육계의 ‘대표선수’였던 내가 독자적으로 무료 강의에 나선다고 하면 돌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는 더 쉬울 것 같다는 판단도 섰다. 그래서 정부의 등에 올라타 ‘어용 강사’가 됐다.(웃음)

△교육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한­ 진보교육감을­ 만들겠다던 포부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교육 행정­ 현장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관료주의의 병폐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다. 단적인 예로 교사가 새학기에 어떤 학년을 맡을지가 불과 개학 일주일전에 전달된다. 공문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한 학교가 연간 6천 건 정도의 공문을 받는 데 비해 핀란드는 10개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다.

△‘반값등록금’이­ 여전히­ 사회적인 화두다.­ 지난­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장학금­ 확충을­ 통한­ 등록금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는 운동의 슬로건으로서 좋았지만 정책적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과연 이 정책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보편적 복지’에 해당하는 것인지, 그리고 소득과 무관하게 똑같이 반값 하는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에서 보편적 복지에 도달하려면 등록금이 무상이거나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면 그렇게 될까. 아니다. 당장 반값으로 내린다고 해도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은 계속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이건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이론적 근거도 없다. 전면 무상등록금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정책이라고 해도, 왜 그게 ‘반값’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 소득에 따른 차등적 등록금 인하는안 되는 건가. 여론의 동의를 얻기도 힘들뿐더러 표현 그대로 정책화한다는 발상은 비합리적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벌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통합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하자. 당장 연⋅고려대가 네트워크에 들어올까. 그럴 리 없다. 서울 및 수도권 사립대는 절대 여기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의 일부 부실 사립대면 모를까. 지금도 학생을 수급하고 운영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통합 국립대를 세운다고 해도 입학정원이 급증해 절대 연고대 수준이 될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최상위는 여전히 일부 사립대가 차지하는 미국 아이비리그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서도 ­상대평가가 ­당연시되고­있다.­ 우리학교를­ 비롯해­ 전국의­ 대학에서도 이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여러­차례­ 비판해왔는데

-상대평가엔 이론적 근거가 없다. 서양엔 상대평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A를 얼마 정도로 주라는 권고 사항 정도만 있을 뿐이다. 경쟁을 통해 학습 동기를 유발한다고? 어떤 식으로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는 교육 당국과 교육학자, 그리고 현장 교육자의 몫이다. 왜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가. 지적 성취가 학습의 동기가 되어야지 동료와의 경쟁이 왜 동기가 되어야 하나.

△잘못된 ­교육제도에 ­맞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저항해야 한다. 상대평가 거부 운동도 좋다. 몇 해 전 카이스트 사태도 근본적으로 상대평가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운동으로 나아가야 했다. 문제의식 있는 교수들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동료들을 경쟁자로 간주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나.

△오늘날­ 교육이­ 부의­ 세습이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만 ­간주되는­것­ 같다

-교육이 선발의 기능을 가지는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객관적 평가가 존재하는 한 잘하고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그 격차를 어떻게 줄이냐다. 교육에서 받은 평가의 격차가 사회에서의 격차로 나타나는것은 분명히 문제다. 삶의 방편을 다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녀들은­ 학원에 ­보내나
-보낸다. 하지만 자녀에게 학원거부권도 준다. 학부모로서 공교육이 문제라고 체감한게 둘째 아이가 수학시험에서 열 개를 틀렸는데 학교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교사가 학생의 성취도에 무관심한 것이다. 사교육을 받는 이유가 꼭 더 높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교육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기능적인 문제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은­ 잘못된 ­공교육을­ 고스란히 ­받아온­ 최대 피해자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좋아하는 것이든, 잘하는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이든, 그것을 빨리 찾기를 바란다. ‘그것’을 못 찾으면 애매한 스펙 관리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온 학생들은 지금까지 배운다는 것의 즐거움을 모르고 자랐을 거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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