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아버지에서 다정한 아빠로 거리 좁히기

 우리 사회의 아버지상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최근 대중매체에 보이는 아버지상을 살펴보면, 과거의 무뚝뚝하고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와 달리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정윤희(동덕여대 교양) 교수는 “요즘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성의 모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것과는 좀 다르게 나타난다”며 “시대마다 아버지의 표상이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아버지상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흔히 우리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때 가부장으로서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엄청난 권위와 힘으로 가족을 통솔하는 이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조선 중기 양난을 겪고 난 뒤 우리사회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부정된다. 근대는 전통을 부정하고 과거와의 구별 짓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대 소설의 창시자인 이광수의 소설에서 고아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더군다나 가부장제는 좁게는 가족제도이지만 넓게는 사회, 국가로도 이어지며, 이렇게 볼 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상실은 국가라는 큰 아버지의 몰락이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을 통해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과거와 결별을 선언했던 서구와 달리 조선의 경우 완전하게 과거와 결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선에서 근대의 성립이 온전히 자신 내부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힘에 의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 의해 과거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나의 과거가 부정될 때, 거기에는 반발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근대 문학 작품 곳곳에는 과거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고 잔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광복 후 곧이어 발발한 6⋅25전쟁의 경험은 또다시 아버지의 상실과 연결된다. 일제 강점 하의 국권 상실이 상징적인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면 6⋅25전쟁은 아버지들의 진짜 죽음 그 자체였다. 이처럼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성은 훼손된 모습으로 문학 속에 나타난다.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1957)에서 아버지와 아들 모두 신체적 결함을 지닌 것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1960년대부터 진행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아버지들은 다시금 강인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라와 가정을 동일시하는 메커니즘 하에서 남성들은 나라의 일꾼이자 가정의 일꾼이어야 했다. 아버지들은 매일 밤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집으로 돌아갔으며, 가족을 위해 다음날 또 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적 아버지의 모습은 대중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재생산되었다.
 
1990년대 중반, IMF를 겪으면서 또다시 한국 사회는 위기에 직면하고 아버지들 역시 위기에 처한다. 성실한 일꾼이던 아버지들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대중 매체는 이제 나약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한쪽에서는 이러한 아버지들을 위로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1996년 발표한 김정현의 <아버지>와 1997년 발표된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위로가 통했던 것일까. 아버지들은 2000년대에 다시 한 번  ‘기러기 아빠’로 변신하는 기염을 토한다.
 
근대 이후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요구된 자질은 크게는 국가, 작게는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었고 이것은 결국 경제적 능력으로 귀결된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에 그의 주된 무대는 집 ‘밖’이지 집 ‘안’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자녀와 관계가 소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씩 변했지만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아버지와 가족(자녀) 사이의 거리였다.
 
그런데 2010년에 들어서며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녀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말이 유행하고, 부성애를 내세우는 드라마가 안방을 장악하고 있다. 이 시대의 아빠상을 살펴본다는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들은 아침밥을 만들고, 자녀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주며, 자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빠이다.
 
이처럼 요즘 대중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아버지는 과거의 무뚝뚝함과 엄격함을 벗어던지고 친근하고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상은 어떠한 이유에서 생성되고 있는 것일까?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임옥희 이사장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역할로 분류되었던 역할을 여성들이 더는 당연한 것으로 떠맡지 않으려고 하게 될 때 형성되는 불안이 젠더불안”이라 하였다. 신자유주의 시장사회에서 아버지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며 젠더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는  “젠더불안의 시대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심리가 다정하고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투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에서 아빠로의 변신은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도도한 물결에 그들이 씻던 삽은 이미 떠내려가고, 그들의 육신만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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