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해인법률사무소 배금자 변호사 (사학 79, 졸업)

 

▲ -③ 해인법률사무소 배금자 변호사 (사학 79, 졸업)

소위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을 위해 뛰고, ‘오 변호사⋅배 변호사’라는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던 선배가 있다. 해인법률사무소 배금자 변호사는 “매사에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어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금자 변호사는 학창시절 부전공으로 법학과 수업을 들었다. 그는 “사학과 법학을 함께 공부했기 때문에 이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법학 공부만 했을 때보다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더 폭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3학년 이후 고시공부에 주력해 합격했고 판사로 임용됐지만, 판사활동을 그만두고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다 단독 개업했다. 배 변호사는 “취업에서 성차별을 크게 경험하진 못한 편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격증시험을 쳐 국가공무원이 되는 것이 가장 차별이 적은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배금자 변호사는 일반 민사사건을 주로 맡아 여성 및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공익활동에 주력했다. 일본 위안부 문제를 담당하고, 한일 국제포럼 활동을 하는 동안 국제 활동에 눈을 떠 변호사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3년 간 미국에서 생활하며 하버드로스쿨(LL.M)을 마치고, 미국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가족들의 지원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여성이 밖에서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려면 필수적으로 가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당시 남편의 외조로 미국유학이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해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사건, 군산윤락가 화재참사 국가배상소송 등은 배금자 변호사가 무상으로 맡아 해결한 대표적인 소송이다. 배금자 변호사는 “김보은 사건과 군산윤락가소송은 가정내 성폭력문제를 은폐하고, 성매매에 있어 남성을 처벌하지 않는 등 잘못된 관행이 잠재돼 있는 소송이었다”며 “이러한 소송을 담당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분야의 법률 개정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손해배상 대법원 판례를 최초로 만들어 냈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에도 기여했다.
 
그가 현재 담당하는 주요 소송 중 하나는 흡연피해자공동소송이다. 배금자 변호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맡아 담당하고 있고, 현재 대법원 계류중이다. 그는 “담배회사에 대한 흡연 피해자들의 책임추궁은 세계적인 추세로,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한 인권차원의 소송”이라며 승소 의지를 드러냈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사회 기득권층의 횡포와 부정의를 뼈저리게 느낀다”는 배금자 변호사. 그는 “판결을 통한 정의실현이 힘들고 외로운 투쟁이라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정의의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이기 때문에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후배들이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애정을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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