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6년>은 광주 시민들이 가족 들을 잃게 만든‘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배(진구 역)의 어머니는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그 날’을 떠올려 경기를 일으킨 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군에서 제대 한 진배를, 남편을 죽인 군인으로 오 인해 칼로 헤치기도 한다. 미진(한혜진 역) 역시 총탄에 어머니를 잃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술을 계속 마시게 되고, 결국에 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5.18은 한 개인과 가족을, 넓게는 광주를 철저히 파괴했다. 집집마다 수많은 진배와 미진이 남아있다.

하지만 광주만 아픈 것은 아니다. 전 국에는 수많은‘ 광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 열풍도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만큼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채 존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정권이 준 아픔을 여직 간직하고 있다. 우리에게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일제강점기의 일본군위안부, 좌우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학살된 제주4.3사건 피해자나 거창 양민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왜곡마저 이뤄지고 있다. 이들에게 ‘매춘부’나 ‘빨갱이’이라는 명칭이 달라붙기도 한다. 또한 아직도 광주 시민들은 폭도로 불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생기고, 악몽 같은 그 날들에 대해 회상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시작 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주4.3사건과 관련해 치유센터가 세워질 계획이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는 위안부 할머니 들이 상담치료를 받은 영상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직접적인 피 해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센터가 생긴 것은 고무 적이다. 이들이 입은 물질적 피해도 보상받기 힘들지만, 정신적 피해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욱 외 면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내러티브 기억’과 ‘트라우마 기억’으로 나뉜다. 내러티브 기억은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도출 하는 정신활동을 지칭하며 정상적으로 심리를 유지하게 한다. 반면, 극도 의 충격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트라우마 기억은 의식에 대한 정상적 인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는 개인만의 기억이라 볼 수 없다. 사회적 기억이다. 이들이 이렇게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게 된 것도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한 탓 이다. 이전에도 역사적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에 대해 상담치료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광주트라우마센터처럼 상시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가동된 곳 은 없었다. 다른 피해에 대해서 국가는 기념하고, 기억하는 측면에서만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상황이 이럴 지언대, 전국에 드러나지 않은 아픔 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기념탑이 나 박물관을 통해서 이들의 모든 아픔이 씻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다시 되풀이 하 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 자들의 아픔 역시 간과되서는 안된다. 내러 티브 기억만 나누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의 기억까지 나누고 기억해야 한다. 산 자는 죽은 자가 지 고 있던 기억의 무게와 자신의 트라 우마까지 더해진 짐 덩이를 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짐을 나눠 짊어 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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