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잡지 '인디고' 박용준 편집장

수영구 남천동에 자리한 인디고 서원.‘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이라는 수식을 지닌 인디고 서원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각종 수험서와 자기계발서만이 살아남은 황량한 출판계에서도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오직 인문학 서적만을 판매한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한다. 인문학 공동체이기도 하고, 전 세계 대학생, 지식인들을 매료한 인문학 잡지‘ 인디고’와 국내유일의 청소년 인문학 잡지인‘ 인디고잉’을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인디고의 편집장이 바로 박용준 씨다. 올해로 갓 서른의 문턱을 넘은 젊은 편집장인 용준 씨는 중학생 시절인디고 서원의 허아람 대표와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인문학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인문학, 그 중에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용준 씨는 결국 대학에 가서도 철학을 전공한다.

용준 씨는 하워드 진, 지그문트 바우만, 슬라보예 지젝 등 전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인문학자를 직접 만났고 그들이 직접 쓴 원고를 인디고에 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용준 씨와 인디고 역시 인문학 잡지로서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인디고서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향긋한 종이 냄새와 함께 인디고 박용준 편집장이 맞이해줬다.

 

 

△철학을 전공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때는 다른 것들이 재미가 없었거든요. 사실 지금은 요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좀 더 일찍 요리에 대한 흥미를 찾았다면 진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해요. 아무튼 그때는 치기어린 포부랄까 푸코처럼 사유하고 싶었어요.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멋도 모르지만 에리히 프롬과 그의 서적이 멋져 보였어요.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의 근본을 알고 싶은 그런 욕망들 말이죠. 그 중에서도 철학이 인문학을 보는 근본적인 눈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17년 동안 철학 공부를 해왔어요.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매주 인디고 서원을 찾아왔죠.

△촘스키, 지젝 등 세계적인 명사를 만나 인터뷰를 한 것으로 유명한데 비결이 있나요

-꼭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거에요. 인터뷰 대상을 정하고 나면 최소한 그의 모든 저서를 다 읽어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낼 때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절실한 마음을 담아 메일을 보내고 요청하면 반드시 응답이 돌아오더라구요.

촘스키도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처음 두 번은 비서가 중간에서 차단해 직접 연락조차 하지 못했죠. 그런데 나중에 촘스키에게 직접 답이 오더라구요. 메일을 읽었고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지젝도 마찬가지고 였고 일단 메일을 읽기만 하면 끝까지 다 읽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쓰는 것이 중요해요.

▲ 박용준 편집장은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집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사진제공=인디고 서원)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지그문트 바우만 그리고 최근에는 슬라보예 지젝을 만났어요. 이들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우선 친절했어요. 대다수 연세가 지긋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가 하는 일들에 관심을 보이셨죠. 지금껏 만나본 많은 분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강의식으로 전달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분들은 달랐어요. ‘젊은 애들이 모여 다니면서 너무 훌륭하다’고 바라보는 따뜻한 느낌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죠. 특히 바우만의 집에는 세 번이나 갔는데 갈 때마다 손수 맛있는 음식들을 요리해주셨어요. ‘너희 주려고 빵을 사왔다’는 그런 말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쟈크 데리다가 말했던 ‘시적인 환대’가 떠오를 정도였죠.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해주시는 말씀도 훌륭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를 환대해주었던 방식들이었어요.

▲ 박용준 편집장과 인디고 구성원들이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잭을 만났다 (사진제공=인디고 서원)

 

△많은 대학생 들이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갈팡질팡합니다. 둘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요.

-먼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려 하는데 내 욕망을 가장 살펴야해요. 가령 친구가 삼성에 입사하겠다는‘욕망’을 보인다고 해서 덩달아 삼성을 욕망할 필요는 없는 거에요. 두 번째는 우선 시키는 대로 해보는 거에요. 사회가 요구하든 선배가 뭘 하든,믿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면 의심하거나 재지 말고‘ 닥치고’ 일단 해보세요.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건(fall in love) 말 그대로 구렁텅이에 ‘빠져드는(fall)’거지 이 사람이 좋을까 저 사람이 좋을까 재는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꿈도 그래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려고 애 쓰다보면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발견해요. 즉‘ A가 아닌것’을 찾아 걸러내다 보면 어느 순간 A가 보인다는 거죠.

△삶의 목적이라든지 계획을 충실히 세우는 편인가요

-그런거 없었어요.(웃음) 그저 주어진 대로, 재고 따지지 않고 살아온거죠. 그래서 별명이‘ 예스맨’이기도 합니다. 다만‘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뤘어요. 그런데 독립하고 나니까 삶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고‘ 돌아갈 구석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 밖에 나머지는 삶이 이끄는대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0대는 시간도 에너지도 많잖아요. 스스로가 어디에도 얽메이지 않는 ‘단독자’일때 많은 것을 해보세요. 나중에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 이것저것 재느라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혹자는 20대의 본질을 불안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내가 실연을 당했을 때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소설을 읽다가 헤어진 연인에 대해이해하지 못했던 점을 발견하기도 하는거에요. 이전엔 경험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의 의미들을 인문학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이건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에요. 우리들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어딨겠어요.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기술을 인문학이 말해주는 거죠.

 그래서 책, 특히 인문학 서적은 함께 읽어야해요. 혼자 읽다 보면 아집과 허영에 빠지기 쉽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온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인문학은 이제껏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외로움이나 아버지의 불안 등을 이해하도록 해줘요. 늘 보았던 것 말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깨달음을 주는 것, 쓸모있는 인문학, 이것이 인디고서원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대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디고 서원에 오는 것이죠.(웃음) 지역의 청년들을 위해서 인문학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20여명 정도 학생들을 모아 궁극적으로 직업을 갖든 무엇을 하든 인문학을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15주에 걸쳐 매주 강연을 하는 거죠. 외국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와서 강연을 하면 책을 밀고 앉아서 듣고 알아서 대화하는 모습이었어요. 이제 그런 문화가 이곳에서 생겨날 수 있길 바라고 곳곳에서 그럴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가장 일상적인 방법은 물론 독서겠죠. 그렇지만 인문학을 책으로 접할 때 굳이 길고 어려운 고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사실 짧을수록 좋아요. 파스칼이 그랬거든요. “더 이상 짧게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짧고 간명하지만 큰 진리를 담고 있는 단편 소설집, 에세이들은 잠시만 읽어보면‘ 이런 가치가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위안을 주죠.

△최근에 관심을 갖는 인문학적 화두가 있나요

-인문학이 과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인문학적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핵심어인데, 인문학이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에요. 즉 우리가 인문학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죠. 여기서 말하는 혁명이란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던 ‘자유를 향한 공동투쟁’일 수도 있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부대신문 공통질문입니다. 30대에 막 접어든 이 시점에서 바라본, 당신의 20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인가요

-‘겸손’이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20대에게‘ 도전 정신’만을 주문하는데 20대는 이미 도전 정신이 충분하고 혈기왕성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겸손하면 뭐라도 하나 더 배울 수 있거든요 . 겸손을 바탕으로‘ 나’라는 작은 경계를 뛰어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해야 해요. 자신의 성공과 안위만을 추구하다보면 삶이 쉽게 뒤틀리는 것 같아요.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행복’의 의미에 대해 물은 적이 있어요. 그는 오히려 저에게 “행복의 반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했죠. ‘행복하지않음(unhappiness)’이 라고 생각했는데 ‘의미없음(meaningless)’이었어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20대는 너무나도 불안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사실 버틴다는 것은 즐긴다는 의미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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