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소설가 박향

▲ 박향 작가는 “지역 문단에 대한 소외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나를 쓰러뜨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설‘ 에메랄드 궁’의 주인공 연희는 가족과 재산, 모두를 잃을 처지에 놓이자 이렇게 말한다. 지난 달 27일,‘ 제9회 세계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166편의 작품들을 뒤로 하고 대상의 영예와 상금 1억 원을 거머쥔 수상작이 바로 <에메랄드 궁>이다. 응모한 작품의 겉표지에는‘ 강지원’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시상식에 참석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사람은‘ 박향’이라는 작가였다. 그는 부산에서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쳐 온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하다. 겉표지에 큰 딸의 이름을 적어 응모한 것이다.

그는 부산 밖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서울의 유명 문예지에 작품을 투고해도 받았다는 연락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가 활동하는 부산의 지역 문단은 다른 지역 문단과 마찬가지로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문학계의‘ 변두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서울 바깥 지역의‘ 변두리’ 작가와 작품은 유명 문예지에 실려 전국의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다.

좌절할 법했다. 그럼에도 박향은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문장을 퇴고하고 다시 퇴고하면서 갈고 닦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문단을 두드렸다. 그 성과가 바로 <에메랄드 궁>이다. 작품은 도시변두리에 위치한, 그 중에서도 특히‘별 볼일 없는’ 모텔인‘ 에메랄드 모텔’을 배경으로 그 곳의 온갖 인간 군상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다만 어릴 적부터 집에는 항상 책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국어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특히 문학 전집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 단편소설들을 읽었어요.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를 읽고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나요. 물론 그 때는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겠죠. 그래도 책을 읽고 독후감도 쓰고 상도 타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첫 소설을 쓴게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저랑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 동생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그 동생이 전 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얘기해줬어요. 처음엔 정말 슬펐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가슴이 설레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싶어진 거에요. 그래서 그 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내 상상력을 보태는 식으로요. 그렇게 소설을 완성했어요. 그리고‘ 여학생’이라는 문학잡지에 그 소설을 투고했죠. 내심 당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죠. 그제서야‘ 친구는 나에게 마음 아픈 이야기를 힘들게 했는데 내가 무슨 정신으로 썼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던 거죠. 투고를 할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아마 그 경험이 소설가의 길을 걷는 저에게‘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가 그 친구를 이용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결국 문학은 결핍과 상처로 시작되지 않나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금도 글을 쓸 때는 늘 이 생각을 떠올리곤 해요.

△<에메랄드 궁>의 배경을 모텔로 잡은 계기가 있나요

-우연히 읽은 기사 때문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무작위로‘ 당신이 모텔을 가는 것을 봤으니 알려지고 싶지 않으면 돈을 입금하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실제로 돈이 들어왔다는 기사였죠. 그 만큼 우리 사회에‘ 떳떳하지 못한’관계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누군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부쳤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모텔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됐어요.

△모텔을 운영하는 초등하교 동창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들었는데 이 중 실제 소설 속 내용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왔데요. 일주일정도 장기투숙을 하겠다고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생아가 딸려 있던 거에요. 옆방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올까 걱정됐지만 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두어달 데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였죠.‘ 그 아이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이야기 말고도 내가 겪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모텔에 대한 깨알같은 정보를 많이 얻었고 그대로 소설 속에 녹여냈어요. 그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까 모텔도 인간들이 살아가는 하나의작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단 이후 20여 년간 세 권의 작품만을 발표했는데 일부러 호흡을 길게 갖는 건가요

-일부러 길게 한 것은 절대로 아니였어요. 사람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요즘도 글 쓰나’에요. 소설가는 항상 글을 쓰는데.(웃음)

부산 지역은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절대적으로 부족해요. 부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만 3~40명 정도가 되는데 대표적인 계간지는 두개 정도에 불과하죠. 한 명의 작가에게 몇 년에 한 번씩 작품을 실을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오는 거에요.

문제는 이런식으로라도 작품을 발표해도 서울 중심의 문단은 거들떠도 안본다는 거에요. 유명 문학상의 심사위원들 조차도 유력한 잡지에 발표된 작품만을 심사를 하니까요. 그래서 지역 작가들은 늘 소외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어요.

△지역 문단 소외에 대한 아쉬움을 수상 소감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사실 많이 회의적이에요. 이미 문학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이 모두 서울에 집중됐잖아요. 하나의 영역, 단체가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에 앞서 작품만 쓰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 구조가 형성되는게 우선이라고 봐요.

△초등학교 교사로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주부가 집에서 글을 쓴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한숨) 글 쓰려고 책상에 앉아있으면 빨래나 설거지, 청소가 계속 저를 부르거든요. 아이들도 오고, 남편이 TV보고. 아, 도저히 글을 못쓰겠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집에서는 글을 쓰기 보다는 책을 읽고 학교에서 글을 쓰는 편이에요. 일과가 끝나고 학생들을 하교시키고 나면 교실이 텅 비어요. 그러면 교실은 어느 교수의 연구실보다 더 훌륭한 작업실로 변하거든요. 그마저도 요즘엔 해야 하는 행정 업무가 너무 많아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글을 쓰는 특별한 습관이나 방법이 있나요

-쓰던 소설을‘ 묵혀두는’ 편이에요. 쓰고 나서 바로 보면 오타도 안보일 때가 많은데, 몇 주일 정도 지나서 읽어보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줄거리에 치중해서 쓰다가 어느 정도 작품이 완성되면 나중에 다시 읽어가면서 존재감 없었던 캐릭터나 군더더기 같은 이야기를 빼기도 하고 반대로 키우기도 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딱 덮고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어요. 소설에는 분명히 갈등요소가 있는데 이 작가는 어떻게 풀었나, 나는 어떻게 풀어낼까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다보면 내 소설에 대한 길이 떠오를 때도 많더라구요.

△좋은 소설의 기준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는 좋은 문장의 비결이 끊임없는 퇴고라고 생각해요. 같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느글거리듯이 같은 문장도계속 읽으면 뭔가 넘어 올 것 같은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읽고 또 읽고 또 고쳐야 해요. 정말 지겹도록 읽어야 해요. 문장 하나하나 읽으면서 반복되는 문장은 식상하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계속 스스로 고민했던 기억이 많아요.

물론 좋은 문장이 꼭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죠. 문장은 물론이고 이야기가 재밌어야 하고 독자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해요.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소설이에요. 정말 재밌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계속 나오거든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청탁이 밀려오고 찾는 곳이 많아 바빠지면 교사를 그만둬야하지 않나 싶은데…. 당장 그럴 것 같지는 않네요.(웃음) 그냥 지금처럼 글을 쓸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쓸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은 이야기를 쓰고싶어요. 앞장을 다시 읽어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소설. 그런 소설은 독자를 키워나가는게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독자의 기억에 남는 소설을남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부대신문 공통질문입니다. 당신의 20대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인가요

     

-‘혼란’과‘ 혼돈’. 이런 단어가 제일먼저 떠올라요. 아마 지금이 20대라면 이렇게 표현 안하고 굉장히 선명하고 즐겁게 표현할 것 같은데, 지나보니까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많아요. 처음에는 원치 않은 학교를 갔고 그래서 공부도 힘들었죠. 사랑과 연애에 대한 혼란스러움도 있었고, 내 꿈에 대한 혼란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다시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 와중에도 소설가의 꿈을 한 순간도 잃지 않았던 건 오로지 소설이 너무 쓰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니까 계속‘ 이 길이 내 길이다’ 하는 생각으로 쭉 걸어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약력>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1986년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연대표 속의 전쟁)

△단편소설집 <영화 세 편을 보다> 발표(2005) △장편소설 <얼음꽃을 삼킨 아이> 발표(2010) △단편

소설집 <즐거운 게임> 발표(2012) △장편소설 <에메랄드 궁> 발표(2013)

△부산소설문학상 수상(1999) △부산작가상 수상(2012) △세계문학상 수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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